형가의 암살기도와 연의 멸망⑤

형가가 왕이 앉은 단 앞에 이르자 내관이 함을 받아들어 진왕 앞에 내보였다.

진왕은 그가 번어기란 것을 확인하고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단 아래 무릎을 꿇고 있던 그들에게 다가갔다.

“번어기의 수급을 거두어온 그대들에게 후한 상을 내리겠노라. 그대들의 이름이 무엇이라 했는가?”

“연에서 온 형가와 진무양이라고 하옵니다.”

“형가와 진무양이라. 내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구나. 아무튼 잘 왔노라. 독항지역의 지도도 구해 왔다고 했느냐?”

“그러하옵나이다. 대왕마마. 독항지역의 지도는 기밀이라 구하기 어려웠으나 내밀한 친구가 이를 구해주어 가져왔나이다.”

“그래 귀한 선물을 가지고 왔구나.”

진왕은 만면의 미소를 머금고 크게 반기며 독항지역 지도를 받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형가는 진무양이 너무나 긴장하고 있어 더 이상 일을 치를 수 없다고 판단하고 두루마리 지도를 넘겨받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펴서 올리려다 그 속에 숨겨온 비수를 꺼내 들고 진왕의 옷소매를 잡았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형가는 비수를 휘둘렀지만 진왕이 민첩하게 몸을 피하는 바람에 옷소매를 스치는 데 그쳤다. 놀란 진왕은 옷소매를 찢어 버리고 재빨리 전각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비수에는 독이 묻어 있었다.

비수는 연나라 태자 단이 서씨 부인으로부터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것이었다. 단은 장인을 시켜 비수에 독약을 발라 달구게 했다.

태자 단과 형가는 그곳으로 오기 전에 독약 묻은 칼이 얼마나 위협적인가를 실제 시험을 통해 확인했다. 죄인의 살을 스치자 금방 독이 온몸으로 퍼져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므로 진왕의 살만 스치기만 한다면 그의 목숨은 끝이었다. 다시 한 번 비수를 흔들며 진왕이 숨어있던 기둥 뒤로 돌아서며 그를 따라 잡았다.

다급하게 벌어난 일이라 대신들도 어쩌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더욱이 진나라의 국법상 왕의 명령 없이 그의 인근에는 내관 외에 누구도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진왕을 호위하는 경호병들은 그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도리어 대신들을 경계했다. 형가와 뜻을 함께하는 무리가 조정 내에 없다고 단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어의 하무차가 꾀를 내어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약주머니로 형가의 얼굴을 내리치며 말했다.

“대왕마마, 칼을 등에 매시옵소서!”

진왕은 자신의 칼을 허리춤에 느슨하게 차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뽑을 수가 없었다. 형가가 주춤하는 사이 진왕은 칼을 등 뒤로 밀쳐낸 다음 장검을 뽑아 그의 왼쪽 다리를 베었다.

부상을 당한 형가는 비수를 진왕에게 던졌지만 빗나가고 말았다. 진왕은 순간적으로 그의 오른 쪽 다리마저 베어버렸다. 양쪽 다리에 부상을 입은 형가는 그 자리에 꼬꾸라지며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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