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옥계동 고령의 맥가이버 임명호 씨

요즘 사람들은 물건을 쉽게 버리는 경우가 많다. 굽 나간 구두, 찢어진 모자…. 다시 사도 그만인 흔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반면, 여기 한평생 누군가의 물건을 매만진 이가 있다. 그의 손길이 닿으면 낡고 허름한 물건은 새 생명을 얻어 주인의 품에 안길 채비를 마친다. 그는 각종 해진 물건을 고치는 점포를 운영한다. 고령의 ‘맥가이버’ 임명호(83)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품값은 따로 정하지 않았다. 25년 전 가게를 연 뒤부터 임 씨가 줄곧 지켜온 소신이다. 예전에는 품값 대신 됫박쌀을 받기도 했다.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 그는“예전에는 쌀이 귀했던 때라 이것만으로도 제겐 큰 기쁨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는 생계를 위해 신발과 열쇠는 2000원씩 받는단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무엇인가 고치는 일에 사연도 많았다. 빈집 문을 따는 일이 그랬고, 망가진 수갑 열쇠를 고치는 일이 그랬다. “빚에 시달린 사람들이 야반도주하면 누군가의 의뢰로 그 집 문을 따곤 했어요. 경찰들도 단골손님이었죠. 수갑을 여는 열쇠가 망가진 탓입니다. 범인을 열심히 잡느라 수갑이 헐거워진 것 아니었나 싶습니다.”

바퀴가 터진 자전거도 끈이 해진 가방도 들고 온 이들의 부탁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은 사라진 석유곤로 심지도 갈았다. 손때 탄 물건은 누군가에게 소중하기 때문에 다시 새것처럼 고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했다.

손재주로 먹고 사는 일도 시류를 탄다. 가령 열쇠만 해도 그렇다. 집집마다 디지털 도어로 바꾸니 일감도 자연스레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도 임 씨는“적지만 곳곳에서 오는 사람이 있다”며“제 몸처럼 물건을 아끼는 알뜰한 사람이 있어 품값이 적어도 살 만하다”고 웃었다.

그에게 정년 없는 평생 업(業)을 안긴 손재주는 우연히 발산됐다. 주변 사람들의 연탄보일러를 수리해 달라는 요청이 그 시작이었다. 임 씨는 “동네마다 연탄보일러를 때던 시설, 우연히 고장난 보일러를 들여다봤는데 생각보다 잘 고친다는 소릴 들었다”고 말했다. 기술 좋다는 입소문은 그를 춤추게 했다. 내친김에 지난 82년 열쇠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당시 돈으로 100만 원을 모아 중구 옥계동에 정착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는 옥계동에 살며 소소한 것들을 수선한다. “웃으며 오는 손님이 좋다”는 임 씨는 그곳에서 터줏대감처럼 누군가의 헌것을 고치고 있다.

최문석 수습기자 mun@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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