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대전의 한 지구대에 들러 사건을 체크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시간은 어느덧 밤 12시를 넘긴 새벽, 어두워진 길을 걸어가다 우연히 어떤 소동을 목격했다. 10대 청소년으로 보이는 남성 수 명과 30대 여성취객이 서로‘왜 쳐다보냐’며 시비가 붙어 금방이라도 주먹다짐을 벌이려 하고 있었다. 주변에 둘러보니 이들과 나 외에 다른 사람은 없는 듯 보였다.

잠시 고민을 했다. 어떡해야 할까. 적잖이 몸집이 있는 남성들은 취객에게 욕을 해댔다. 그 취객 또한 지지 않고 남성들에게 감정 섞인 말들을 쏴대고 있었다. 이런 일에 괜히 끼어들면 구설에 오르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도 됐다. 기자 일을 하면서, 선의로 행한 일이 본래의 뜻과 달리 괜한 억측이나 뜬소문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많이 경험해 왔기에.

그러나 그런 이유로, 그저 모른 척 방관한다면 누군가의 인생에는 불행이란 빨간 줄이 그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달려갔다. 뛰어가 주먹다짐을 벌이려는 이들을 뜯어 말렸다. 흥분한 남성들에게는 “홧김에 주먹을 휘둘러 인생을 망치지 말라”고 했고, 남성들의 화를 돋운 여성 취객에게는 “술 취했으니 아이들을 자극하지 말고 가만히 계셔달라”고 했다.

물론 흥분상태의 그들이, 길 가던 평범한 시민의 말을 그리 고분고분 듣지는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말린 덕분인지, 그들의 화는 많이 누그러들었다. 다행히 주먹이 오갈 뻔 한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슈퍼맨 같은 누군가가 나타나 이날의 소동을 말끔히 정리했다. 자신을 모 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찰이라고 신분을 밝힌 남성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그는 다른 업무를 하다 우연히 상황을 목격하고 ‘멀리서 지켜봤는데 상황이 심각한 것 같아 왔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의 노력으로 청소년들은 취객에게 사과했고 새벽녘 소동은 막을 내렸다. 그제야 정신이 든 남성들과 취객은 경찰, 그리고 내게도 “말려줘서 고맙다”는 감사 인사를 전했다. 몸은 고단했지만, 누군가의 불행에 눈 감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리고 ‘고맙다’는 한마디 말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최근 대전에서는 한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의식을 잃은 택시기사가 교통사고를 냈는데 택시에 탑승했던 중년 승객들이 신고조치를 취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고 결국 택시기사가 숨을 거두고 만 사건이다. 제때 신고조치를 취하지 않은 손님들에 대한 왈가왈부에 앞서, 만약 내가 그 주변의 목격자였다면 신속히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수 있었을까 라는 고민지점을 갖게 했다. 누군가에 대한 비판에 앞서 다시 자세를 바로잡는 이유다.

다른 누군가의 불행을 그저 모른 척, 방관하는 사회는 비극적이다. 타인의 불운에 손 놓지 않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주변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자신에게 닥칠 부담을 감내할 용기도 필요해 보인다. 다만 용기 있는 마음은 누군가로부터 강요된 의무가 아닌,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진심이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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