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나라를 접수하다⑪

진왕의 명령이 떨어지자 내관 조고는 서둘러 왕전에게 진왕이 급히 찾는다는 전갈을 보냈다. 왕전은 몸이 몹시 아프다는 것을 핑계로 사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왕의 명이었으므로 끝내 거부할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며칠이 지난 다음 노구를 이끌고 진왕 앞에 나아갔다. 수염을 오랫동안 정리하지 않아 초췌한 모습이었다.

“왕전 장군 지난번에는 대단히 미안했소. 장군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것이 내 불찰이었소. 이번에 60만 대군을 줄 테니 꼭 초나라를 멸하도록 하시오.”

진왕은 왕전에게 말했다. 하지만 왕전의 대답은 의외였다.

“신은 이미 몸이 노쇠하여 60만 대군을 이끌 능력이 없사옵니다. 젊은 장수를 전장에 보내는 것이 합당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부디 신의 뜻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대왕마마.”

왕전은 엎드려 누차 사양했다.

하지만 진왕 영정은 끈질기게 왕전을 설득했다. 그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도록 종용하며 마지막으로 통일대업을 위해 힘써줄 것을 당부했다.

후한 음식을 하사하고 아리따운 여자를 붙여 그로 하여금 마음을 돌리도록 종용했다. 몇 날 며칠이 걸려도 왕전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 진왕의 뜻이었다. 초나라의 섬멸은 왕전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를 궁성에 잡아두고 갖은 공을 들이고 있었다.

“장군께옵서는 대단하시옵니다.”

진왕의 명에 따라 왕전의 침소에 든 어린 계집이 말했다. 그녀는 앳되어보였다. 볼그레하게 달아오른 볼과 솜털이 송송하게 묻어있는 피부는 토실하게 살이 오른 복숭아를 연상시켰다. 이제 겨우 열댓 살을 먹었을까? 봄바람조차 쏘이지 않았을 법한 애송이였다.

“네가 무얼 안다고 그러느냐?”

늙은 왕전이 주안상을 마주하고 앉아 말했다.

“소녀가 어찌 왕전 장군님을 몰라뵙는다 말이오니까? 조나라를 멸망시키시고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이끄신 명장이 아니시옵니까? 만약 우리나라에 장군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위세를 자랑치 못할 것이옵나이다.”

“허 그 참. 어린 것이 맹랑하구나.”

왕전은 껄껄 웃을 뿐이었다. 눈, 코, 입 어느 한구석 나무랄 곳이 없는 미모와 초름한 맵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 어린 네가 내 수발을 들겠다고 침소에 들었단 말이더냐?”

“그러하옵니다. 소녀가 겉보기에는 어려 보이지만 익을 것은 다 익었나이다. 더구나 왕전 장군께옵서 어린 계집의 신선한 기를 받아 기운을 차리도록 하기 위해 대왕마마께옵서 특별히 소녀에게 수발을 들도록 했나이다. 마다말고 거두어 주시옵소서.”

계집은 늙은 장군 옆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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