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일<정치부>

막장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한 작태가 청와대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연일 터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속보에 귀를 기울이고 밥자리 화젯거리, 술자리 안줏거리로 삼는 것이 요즘 우리네 일상이 된 것 같다. 어디까지가 추악한 권력의 민낯일지, ‘진짜 소설을 쓰는구나’라고 하며 웃어넘겨 버려야 할 사안들이 대한민국 권력 중심부에서 자행된 ‘사실’임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국민들은 괴롭고 서글프다. 대통령이 과연 하야를 할지, 스스로 물러난다면 언제쯤 권좌에서 내려올지, 또 국회에선 언제쯤 탄핵안을 발의할지, 사태 추이를 지켜봐야 하는 씁쓸한 상황에 쓴웃음이 나올 뿐이다.

대통령이 시정잡배나 잡범, 파렴치범처럼 질시의 대상이 되고 조롱거리가 된 비정상의 나라에서 태어난 국민들 사이에선 “이게 나라냐”, “정말 이러려고 국민이 됐나, 자괴감이 든다”라는 푸념이 이어진다.

박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SK그룹이 주도한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를 최근 방문했던 인사에 따르면 센터 직원들의 사기가 크게 저하돼 일할 맛이 안 나는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창조경제’에도 분명 최순실이 깊이 개입돼 있을 것이란 의혹이 대두되며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의장을 맡고 있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대전지역회의 관계자는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는 최순실의 언니 최순득의 장남이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추천된 것에 주베트남 대사 임명과 관련된 인사 청탁이 개입돼 있다는 의혹이 불거져 곤혹스럽다”라며 “보수 성향에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자문위원들이 많다 보니 떠들썩하게 행사를 여는 것도 요즘은 눈치가 보여 일부 행사는 자연스레 취소가 됐다”라고 귀띔했다.

9일 미국 대선 개표 방송을 지켜보면서 (결과와 무관하게)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12년 12월이 떠올랐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귀결된 18대 대선 말이다. 박 후보는 51.55%를 득표, 48.02%를 얻은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3.53%포인트 차로 꺾고 첫 여성 대통령의 영예를 안았고, 아버지 박정희에 이어 부녀가 대권을 잡는 진기록을 세웠다.

일각에선 “우매한 국민들이 도장 한 번 잘못 찍은 대가가 이렇게 크다”라며 40년간 이어진 최태민 일가와 박 후보의 특수관계에 대한 철저한 검증 없이 보(保)·혁(革) 대결구도에 매몰돼 보수 진영에 표를 몰아준 국민들에게도 이번 사태의 책임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사이비 종교 논란 등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인물을 대권주자로 내세운 새누리당에게 1차적 책임이 있지만 도올 김용옥 선생은 “초라한 하나의 여인(박근혜)이 또 하나의 평범한 영매(靈媒)라고 하는 아줌마(최순실)에게 의존해 모든 판단력을 내리는, 즉 자기의 이성적인 로고스(Logos)가 없는 하나의 인간! 이 인간을 국민의 대다수가 위대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도장을 찍어서 대통령을 만들었던 이 역사가 얼마나 우리 민족이 부끄럽게 생각해야 되느냐”라고 개탄했다. 참으로 통탄스러운 노릇이다.

대통령을 탄생시킨 산파역을 한 것처럼 떠들어대며 취임 초기만 해도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자처하다가 임기 말이 가까워오면 표변(豹變)해 정권의 저격수로 공세를 취하며 ‘끊어내기’를 시도하고, ‘다음 정권은 우리가 만든다’라는 듯 여론을 주도하려는 일부 보수 언론들의 행태 역시 청와대 못지않게 참으로 비정상적인 한국 언론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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