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선시절 고향으로 부임한 한 군수에게 난처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가장 기피하고 싶어 하는 혐오시설 중에 하나인 추모공원 조성 문제를 놓고 반대하는 마을주민들과 적법을 주장하는 사업자 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중간에서 합의점을 찾아주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수 입장에서는 무조건 반대하는 주민의 편을 들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허가신청서를 반려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진퇴양란에 빠져 있었을 때 이 군수는 기가 막히는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려냈다.

천수만 A, B 방조제의 마지막 공정인 물막이 공사를 폐어선을 이용해 막아낸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의 ‘급하면 통 한다’는 경영철학처럼 이 군수는 사업자에게 돌연 행정소송을 제안했던 것이다.

소송에서 군이 질 것을 뻔히 알고 있었던 군수는 모양새가 조금 구차스러워 보이더라도 개발허가를 해줄 수밖에 없다는 명분을 얻어내기 위한 꼼수였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연말만 되면 누리과정 예산편성 문제를 놓고 어린이집 원장들이 도청과 교육청을 오가며 벌이는 농성이 연례행사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라도 해야 예산편성권자인 도지사나 교육감에게 명분을 만들어줌으로써 누리과정 예산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에도 충남어린이집연합회가 충남도의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도내 2000여 개 어린이집, 3만여 명의 아동 교육과 1만 4000여명 보육교사의 생계를 책임지라”며 “언제까지 이 문제를 갖고 거리에서 농성을 하게 할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편성 문제를 놓고 학부모들의 불만을 넘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은 복건복지부와 교육부의 한심한 핑퐁행정 때문이다. 저 출산에 따른 인구감소로 내구소비가 줄어들면서 나라경제가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많이 낳아야한다는 데는 두 부처 모두 공감하고 있으면서 정작 아이들의 교육비 지출은 서로 딴청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3일 새벽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누리과정 예산의 40%인 8600억 원을 정부지원으로 충당하기로 결정돼 일단 어린이집 원장이나 학부모들이 한 시름 덜게는 됐지만, 그것도 3년간 한시적인 합의여서 누리과정에 따름 보육대란은 시한폭탄으로 남아있다.

문제는 어차피 해주어야 하고 해 줄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학부모나 원장들을 실컷 울려놓고 젖을 줘 달래는 식으로 더 이상 국민을 명분의 도구로 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산=이회윤 기자 leehoiyun@ggilo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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