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대전민예총 이사장

박근혜 대통령의 거듭된 대국민담화에도 하야와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촛불은 더 거세지고 있다. 구체적 근거와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데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떠넘기며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습이 국민의 분노를 더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실히 수사를 받겠다던 그간의 약속마저 천연스레 뒤집으면서 인간적 연민마저 사라져버렸다. 오죽하면 콘크리트 지지기반인 대구·경북의 지지율이 전국 평균인 4%보다 더 낮은 3%를 기록하겠는가. 물론 아직도 거친 표정과 험악한 욕설로 촛불 국민에 맞서는 극소수의 지지자들이 있지만, 국민의 마음을 되돌리긴 너무 늦었다. 국민들은 이미 박근혜 이후를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도 경북 구미에선 ‘박정희 대통령의 99회 탄신제’가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과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자들의 충돌 속에 치러졌다. 그간 “박정희 대통령은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하늘이 내렸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라고 찬양하던 남유진 구미시장은, 이번에는 “박정희 대통령은 가난과 보릿고개의 궁핍을 없애고, 대한민국을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위대한 인물”이라며 그간의 낯 뜨거운 신격화를 삼갔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과 민낯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그간의 무조건적이고 비이성적인 동정에서 비로소 벗어나게 됐다. 그렇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낯 뜨거운 우상화는 과연 합당한가. 우리나라의 고도성장과 근대화는 박정희의 초인적인 지도력만으로 가능했는가. 박정희 개인의 지도력이 온전히 인정되려면, 당시 우리와 비슷한 조건의 다른 나라들은 그런 지도자가 없어 정체됐음을 입증해야 된다. 하지만 동시대의 대만·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은 개발독재자가 없었어도 우리를 능가하는 고도성장을 이뤘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1950년대에서 1970년대가 세계자본주의의 황금기였기에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이 국가 주도 성장을 이뤘다고 본다. 오히려 대한민국은 국가 주도 성장을 이룬 나라들이 보편적으로 복지제도를 정비한 데 반해, 폭압적인 국가동원체제 속에 노동자·농민이 배제되면서 심각한 소득불균형과 양극화의 후유증을 남겼다고 비판한다. 또 보릿고개를 없앤 것은 윤보선 대통령 후보의 이중곡가제 공약을 가져와 가능했고, 경제개발계획도 민주당 정권이 준비한 것을 실시한 것에 불과하다며, 박정희 개인의 지도력으로 보긴 어렵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박정희 대통령의 18년 개발독재와 유신통치를 종결시킨 10·26 사건이 단순한 우발적 사건이 아니었음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부산에서 시작된 유신철폐 시위가 마산으로 확산되면서 격렬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었다. 대학생이 시작한 시위였지만 절대 다수의 시민들이 참여한 대규모 항쟁으로 발전한 것은, 물가고 등의 경제난과 인권을 탄압하는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 때문이었다. 자신과 육사 동기인 박정희를 저격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자신의 저격행위를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쏜 민주주의 회복혁명”이라고 말했다. 당시 박정희는 유신체제를 고집하며 “시위대에게 내가 직접 발포를 명령하겠다”라고 호언하는가 하면, 경호실장 차지철은 “캄보디아에선 300만 명을 쏴 죽이고도 까딱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폭동이 일어나면 한 100만 명이나 200만 명 처치하는 게 무슨 문제겠습니까?”라고 공언하는 아주 야만적인 시절이었다.

이제는 그런 야만의 시절과 단호히 절연해야 한다. 지금은 전제군주의 폭정을 참으며 작은 시혜에 눈물 흘리며 감동하는 봉건왕정시대가 아니다. 국민이 당당한 모습으로 인간다운 권리를 만끽하는 민주주의 시대이며, 재벌 중심 경제체제에서 그간 배제됐던 중소기업인과 자영업자, 노동자와 농민 등이 성장의 과실을 고루 누리는 경제민주화연대의 진정한 공화국을 이뤄야만 하는 시대다. 이것이 바로 촛불의 정언명령이며, 박근혜 이후에 대한 우리의 꿈이다. 이런 꿈은 우리가 그간 내면화해 왔던 박정희·박근혜에 대한 우상화를 넘어설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박정희 신드롬은 조작된 신화였음이 이젠 명확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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