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오 대전도시재생본부 도시정비과장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말하는 정비사업은 재개발·재건축 등 물리적 환경개선사업으로써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주민들이 조합을 결성하고 사업을 시행하는 방식이다. 수도권 특히 서울 강남지역의 재건축사업은 양호한 인프라와 넘치는 수요로 수십억 원씩 하는 집값에도 불구하고 사업추진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지방 도시의 정비사업 추진 여건은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다.

대전시는 70~80년대 도시성장기에 조성된 건축물 노후화 및 낙후된 원도심 지역 활성화를 위하여 2006년에 정비사업의 근간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이하 도정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그동안 수차례 수정과정을 거쳐 2006년 최초 계획 수립 당시 정비예정구역 202개소였던 것이 현재는 121곳으로 축소되었다. 올 초 도정기본계획을 수정하면서 정비사업 용적률 상향 등 사업성 제고를 통한 사업 재개를 시도해 보지만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게 현실이다. 다행히 최근 중산층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뉴스테이 연계형 정비사업이 새로운 이슈로 부각되고 있으며 대전 대화동2구역이 2016년 하반기 뉴스테이 사업으로 선정되어 지방도시의 정비사업 활성화를 가늠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개발하고 사업성을 높일 수 있는 규제 완화 등 제도적 정비도 필요하고, 도시·주거환경정비기금(이하 정비기금)을 적립하여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도시정비법 제82조에는 ‘특별시장, 광역시장 등은 정비사업의 원활한 수행을 위하여 정비기금을 설치하여야 한다’ 고 규정하고 재원은「지방세법」제112조에 따라 부과·징수되는 재산세 중 도시지역분의 10%를 적립하도록 했다. 이런 기준에 따른다면 대전시의 경우 1년에 약 80억 원의 정비기금을 확보할 수 있고, 정비기금은 사업 초기에 각종 계획비용 지원, 추진위원회 운영자금 대여, 임대주택의 건설·관리 등에 활용할 수 있다. 문제는 지방세법 개정으로 시세이던 도시계획세가 2011년부터 구세인 재산세로 통합되어 광역시에서 운영하는 정비기금이 적립되지 않다는 데 있다. 자치구의 재정 형편상 직원들의 급여를 걱정하는 상황에서 정비기금 적립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대전시의 경우도 2012년 이후 도정기금 적립금은 한 푼도 없는 실정이라서 향후 2~3년 내 도정기금은 고갈될 위기에 처해 있다.

어릴 적 시골집 우물 옆에는 항상 마중물 한 바가지가 남아 있었다. 그 한 바가지 마중물이 있어야 만 저 깊은 곳의 시원한 생수를 길어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정비사업도 마찬가지다. 많은 집을 짓고 떼돈을 벌자는 것이 아니라 불편하고 불안한 노후 주택을 새롭게 개량하고 열악한 기반시설을 확충하는 정비사업이 시작될 수 있도록 적재적소에 정비기금을 활용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도시정비법 전면 개정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보다 현실적인 정비기금 확충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앞으로 다가올 저 성장·저 출산 시대를 대비한 정비사업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정비기금이 확충되면, 계획비용 지원뿐 아니라 기반시설 확충, 시민 안전을 위한 범죄환경예방 디자인사업, 유니버셜 디자인사업 등을 시행하고, 새롭게 정비사업을 시행하는 경우에 사업 추진을 준비하는 비용을 지원하여 정비 사업이 보다 투명하게 시행될 것이다. 마지막 남겨진 한 바가지의 물을 다 쓰기 전에 보다 현실적인 도정기금 확보 방안에 대해 국가와 지방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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