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수 충남대 교수

충남대학교 자치행정학과에서는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발전을 위해 학생들이 지방자치에 대한 현장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매년 국내·외 지방의회를 찾아간다. 올해는 우산혁명으로 더욱 유명해진 홍콩의회를 방문했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최순실 씨 사건으로 지방자치는 더욱 빛나고 있다. 만약 지방자치가 실시되지 않고 광역지방자치단체장과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을 모두 대통령의 측근으로 임명했다면 국정은 수습의 동력을 잃었을 지도 모른다. 다행히 큰 혼란 속에서도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흔들림 없이 튼튼하게 받쳐주고 있어 국가는 붕괴 없이 그 절차를 밟아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방자치의 큰 힘이다.

홍콩은 1842년 난징조약이 체결되면서 영국령 식민지가 됐으나 1997년 7월 1일 중국으로 반환됐다. 홍콩기본법에서 앞으로 50년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병존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채택하면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없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일국양제 하의 홍콩의회 의원은 총 70명으로 지역의 직접선거에 의해 35명, 직능별 간접선거에 의해 35명이 선출되며 정치적 성향은 친중파 계열과 민주파 계열로 크게 2분돼 있다. 2016년 9월 선거에서는 2014년 우산혁명의 영향을 받아 친중파 40석, 민주파 29석으로 민주파 의석이 2석 늘고 친중파 의석이 3석 줄었다. 이것은 우산 시위를 주도한 학생과 홍콩 독립을 지지하는 인사들이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독립이라는 이슈와 반중감정이 뒤섞여 있는 상황이라 묘한 감정을 느끼면서 우리는 의회 안내자를 따라 의회의 면면을 둘러보았다. 홍콩의회도 다른 나라 의회와 마찬가지로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모두를 가지고 있었으나 어두운 면보다는 밝은 면을 많이 지니고 있었다.

첫째, 홍콩의회는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다. 건물 설계 자체부터 다른 나라의 의회와 많이 달랐다. 건물 내부는 선명성과 투명성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유리창이나 유리벽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 특히 본 회의장 내부를 관람객이 언제나 볼 수 있도록 벽면을 투명하게 했다. 민원인과 협의하는 모습이 보이도록 복도의 공개된 장소에 책상과 의자를 배치하고 있었으며 실제 열심히 협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의원들의 연봉도 일반 시민들의 평균 연봉보다 2-3배 높도록 해 의회의 업무에 검은 그림자가 닿지 않도록 했다.

둘째, 공부하는 의원상을 보여주었다. 의원들 간 토론을 위해 세미나 룸을 많이 만들어 놓았으며 방해받지 않도록 일반인을 통제했다..

셋째, 의회를 차세대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세미나실에는 초등학생들이 모의의회를 열고 손을 들면서 진지하게 질의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어느 의회에서도 본 적이 없는 장면이었다. 또한 의회 내 입구 포토존에서는 고사리 손을 가진 유치원 학생들이 단체로 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넷째, 의회는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라는 높은 자부심과 위상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의회의 로고였다. 의회의 정면에 입법부를 나타내는 입(立)자를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새겨 넣었다. 또한 입법부의 역사를 홍콩의 역사와 함께 별도의 전시실을 만들어 출입을 통제하면서 전시와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두운 면도 간과할 수는 없었다.

첫째, 직능대표의 수가 35명으로 과반을 차지하고, 공업계 대표가 의회 의장을 맡고 있어 중국 정부의 관여를 언제든지 받을 수 있으며 견제와 균형이라는 의회 원래의 기능이 훼손될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둘째,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아직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직능대표에는 장애인이 없었다. 그래서 인지 시민의 약 5%이상이 장애인이지만 장애인 전용 주차장이 아무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으며 지하철에서의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와 장애인 좌석 정도가 전부였다.

학생들과 홍콩 지방의회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용비어천가의 한 대목인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뮐세”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국정농단사건과 촛불시위로 중앙이 흔들릴 때 지방이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준 것은 지방자치의 훌륭한 역할이며 결실이다. 심란한 일국양제와 50년 후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에 대한 홍콩의회의 노력은 분명히 우리에게 큰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의회의 선명성과 자부심, 연구하는 의회의 위상, 중앙정치뿐만 아니라 풀뿌리 지방자치를 위한 의회차원의 차세대 민주주의 교육 등은 우리 학생들에게 큰 귀감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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