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놀음의 경계, 종교에서도 화두

중세인들의 도박에 관한 이야기다. 주사위 놀이인데, 이 놀이가 도박으로 변해 버린 경우는 일반인들에게만 일어났던 것은 아니고, 수도자들에게까지 번졌다. 그러다 보니 교회 내에서도 주사위 놀이와 장기놀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분분했다. 1058년 성 다미아노는 후에 교황이 된 친구 니콜라우스 2세(Nicolaus II, 재위 1059~1061)에게 편지를 보내 이런 놀이를 비판했다. 교황그레고리우스 7세(St. Gregorius VII, 재위 1073~1085)도 그가 아직 추기경이었을 때 보낸 서한에서, 이런 놀이를 수도자들이 즐긴다는 것에 격분하면서 이들을 죄인 취급해야한다고 말했다. 만약 주교직이나 추기경직에서 이런 놀이를 하는 자가 있다면 당연히 쫓아내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하지만 이런 말에 대해서 해당자들은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주사위 놀이와 장기놀이는 엄연히 다르다. 지금까지 교회가 주사위 놀이는 금지였지만 장기놀이에 대해서는 허락했는데 갑자기 왜 그러는 것이냐?”고!

그러자 성 다미아노가 나서서 “이것이나 저것이나 다 놀음의 일종”이라고 못 박았다. 이처럼 일반인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조차도 도박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으니 당시의 도박은 사회문제의 한 요소로 보아도 무리가 없겠다.

1310년 트리어의 종교회의에 남은 문서이다.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거나 여가로 하는 주사위 놀이는 허용하지만 도박으로 흐르는 것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훨씬 후, 개혁을 추구했던 추기경 니콜라우스(Nikolaus von Cues)는 1455년의 종교회의에서 정신건강이나 여가를 선용하기 위한 것 일지라도 주사위 놀이는 해서는 안 된다고 일체 금지시켰다. 그렇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수도자들 중에는 놀이에서 도박으로 빠졌던 이들이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1416년 파리에서 한 사제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그는 카멜리트수도원에 있었던 전직 수도자였다. 어릴 때부터 도박에 심취했던 이 전직 수도자는 그 버릇을 털고선 수도원에 들어갔지만, 도박의 자유가 제한된 수도원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옷을 벗어던지고 나왔다. 그 이후 그는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군인으로 자원했다가 다시 어떤 귀족집의 종살이도 했고, 체포되기 전에는 거리의 음악사단체에 들어가 있었다.

그는 이렇게 이 생활 저 생활 전전하다가 결국은 강도와 좀도둑질 때문에 법정에 선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놀이로 시작했지만 더 깊게 빠질수록 도박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보니 중세에도 관청이 개입하지 않았겠는가? 도박문제는 중세나 지금이나 한 인간의 삶을 파멸로 이끄는 매체인 것 같다. 오늘날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이들을 보더라도 말이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