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택 대전 동구청장

겨울날 수도가 얼게 되면 며칠 동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밤잠을 자다 말고 급히 옷가지 몇 벌로 수도 기둥과 꼭지까지 꽁꽁 싸매며 총력전을 펼쳤던 기억이 있다. 그것마저도 내심 불안해서 수도꼭지를 열어 한 방울씩 커다란 대아에 똑똑 떨어지게끔 해놓고 다시 밤잠을 청했는데, 다음날 일어나 보니 물로 한가득 채워진 대아에서는 물이 조금씩 흘러넘치고 있었다. 평소보다 더 춥다는 기상예보에 수도꼭지를 좀 더 열어둔 게 원인이었다.

무슨 일이든 원인이나 과정 없는 결과는 없다. 달이 차면 기울고 물이 채워지면 넘치는 법이다. 지금 우리가 보여주는 모습은 바로 과거 한순간, 순간이 모아져 이룬 결과물이라는 엄중한 명제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할 인생에 관해 많은 깨달음과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다. 그렇기에 그 결과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해도 스스로가 오롯이 끝까지 책임져야 할 몫이다.

지난 9일에는 헌정사상 유례없는 현역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촛불민심에 부응하며 압도적인 다수의 찬성으로 가결된 바 있다. 상식과 순리에 어긋나는 욕심과 부정이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해의 폭은 물론이고 상상할 수 있는 정도보다 훨씬 넘쳐흘렀던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어린 학생들부터 지긋한 어르신들에 이르는 수많은 국민이 분노와 실망감을 안고 추운 날씨에도 촛불을 들고 곳곳의 광장과 거리에 나와 금빛 물결을 이루며 한목소리를 냈던 것이다. 그리고 준엄했던 국민의 심판은 탄핵소추안 국회통과를 이끌어냈다.

이 모든 것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생각한다. 올바르지 못한 일이 일시적으로 통용될 수 있지만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가게 되어 있음이다. 현 정부에 들어와서 정도(正道)를 벗어나며 국정을 농단했던 무수한 사례들에 관해 얼마 전까지 우리가 아무 것도 몰랐다 해도 이번의 경우처럼 진실은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동안의 역사가 가르쳐주었던 교훈인 것이다.

이 순간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른길에 접어들게 된 지금이 또 하나의 출발점이자 시작이 될 것이며, 특히 장기적 관점에서 긍정과 희망을 내포하고 있는 말인 사필귀정에서 대한민국과 우리는 새 역사를 만들기 위한 강력한 힘과 좋은 기운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고 있다. 750만 개의 촛불들이 거리에 나와 불을 밝혔지만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2항의 가치를 물리적 충돌이나 폭력 없이 평화적 주장으로 실현하고 쓰레기마저도 스스로 치웠다.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지켜내며 전 세계로부터의 칭찬과 함께 대한민국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단기적으로 대한민국의 품격에 일부 손상을 주었겠지만 국민 모두가 민주주의(民主主義)라는 위대한 가치를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겪어봤던 생생한 경험은 대한민국의 업그레이드와 선진국 진입에도 단단한 디딤돌로 작용할 것이다. 다행히 큰 고비와 위기는 넘겼지만 대한민국함(艦)은 아직 격랑의 파도에서 완벽히 벗어나지 못했다. 당분간 어느 정도의 국정혼란이 일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대통령 권한정지로 인한 국정공백 최소화와 함께 국민갈등과 분열이 없는 국정안정 기조가 서둘러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위대하고 성숙한 우리 국민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공평한 기회와 평가가 주어지는 사회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열망을 촛불집회에서 소리 높여 외친 바 있다.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이 지록위마(指鹿爲馬)로 왜곡되고 묻혀버리면 지금처럼 탈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나부터 앞장서는 자기반성과 개혁에 관해 진지하게 곱씹어보고 실행에 옮겨야 할 때라고 확신한다. 아울러, 사필귀정(事必歸正)을 실현하고자 하는 국민의 촛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잊지 말았으면 한다.

한현택 동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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