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시대는 백성이 주인이며 모든 국민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한다. 대전은 계룡산시대를 이끌어 가야 할 선도적 역할로 역사·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대한민국을 대표할 도시로 성장해야 한다. 우리 선조들이 갈망했던 왕조의 시대가 지나가고 백성이 주인인 계룡산시대가 100년이 지났다. 한낱 공주의 작은 시골마을인 한밭(大田)이 현재는 대전이란 이름으로 인구 150만 명이 넘는 명실상부한 광역도시로 성장했지만 정작 대전시민은 계룡산시대의 의미를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시대적 사명을 외면하는 것이다.

계룡산시대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자. 고려시대의 망이와 망소이 형제의 난을 시작으로 조선시대의 이성계에 의한 계룡산 도읍과 만인산 태조의 태실, ‘정감록의 도참 사상’ 에 의한 선구자들의 역할, 동학혁명의 모태,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 이후 박정희의 공주 장기 수도(首都) 이전 계획, 전두환의 계룡산 620 사업, 노태우의 둔산 행정도시 건설, 노무현의 신행정수도 이전 등의 노력이 있었다. 또 그 과정에서 백성과 국민이 모두 함께했다. 그 결과 과거의 한밭은 현재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수도의 기능을 갖췄다. 종묘와 사직에 해당하는 국립대전현충원이 갑동에 위치하고 문무(文武) 백관인 문인을 대표하는 연구자들이 대전의 과학연구단지에 있으며 무인을 대표하는 육군, 해군, 공군의 사령탑이 계룡시 신도안에 위치했다. 또 행정 관청인 세종 종합청사와, 대전 둔산종합 3청사가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다만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이전이 필요할 뿐이다.

대전의 지리적 위치 또한 중요하다. 남한의 중앙에 위치해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인 철도와 교통의 중심지이다. 이를 시샘하는 일부에서는 남북이 통일된 뒤 수도를 한반도의 중심인 개성이나 파주 지역으로 지목하는 시대적 착오를 하고 있다. 통일 후 수도는 한반도인 육지뿐만 아니라 우리의 해양 바다인 동해와 서해, 남해를 포함한 육지와 바다의 중심인 계룡산이 적합함을 인지해야 한다. 따라서 대전은 한국을 대표할 성장 도시로 외형을 갖추고 있다. 이제는 모든 국민이 갈망하는 모두가 고루 잘 살아가는 모범적 도시로의 변모를 논의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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