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작심삼일’이라지만, 연말이 되고 연초가 되어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해에는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한 사람도 없을 듯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망년회니 송년회를 하고,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정리하고, 산뜻한 새해맞이로 해돋이를 보거나 시무식을 한다. 낡은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이한다고 한다.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거나 자기가 믿는 이에게 기도를 하고 예배를 한다. 그러면서 또 자기 자신을 갈무리한다. 이렇게 한 해를 살아보자고 다짐한다. 비록 그 다짐이 세 날을 가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도 영원히 지속할 것이란 맘으로 아주 굳게 결심한다. 그것이 좋다.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버릇이 있더라도 3일씩만 결심하고 또 결심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런 결심 없이 사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언젠가부터 그런 결심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대로 잘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간에 다른 무수히 많은 일들이 생겨서 가는 길을 바꾸거나 고쳐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 대신 오래도록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따져보아서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면 해 본다. 꼭 끝까지 하겠다는 결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으로 해 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은 가능한 한 오래 지속한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일들 중에는 한 번 시작했다 하면 오래 지속하는 것들이 많다. 그것은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한 뒤에 오는 내 나름의 삶의 버릇인지도 모른다.

올해뿐만 아니라 일생을 통하여 하고 싶은 간절한 소원이 있다. 그것은 내 자신이 그렇게 살고 싶으면서 동시에 이웃과 함께 그렇게 살고 싶다. 끊임없는 실험으로 내 삶을 그것에 집중하고 싶다. 내 자신 폭력을 모르고 살고 싶다. 동시에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폭력 없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어제의 원수 같은 관계라도 새로운 화해로운 관계로 바뀌어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온갖 곳에 폭력이 너무 가득하고 많다. 말로, 맘으로, 제도로, 심리관계로. 권력으로, 돈으로, 명예로, 지위로, 일로 폭력 한다.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폭력이 그렇게 난무하는 것은 상당히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원인되는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소멸시키는 일이 일어나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일단 나는 내 맘 속에 화평한 맘을 먹고 살고 싶다. 어떤 상황이 되든 내 자신이 평화가 되면 좋겠다. 매일 매순간 화평한 맘이 내 맘 속에 가득히 퍼지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일단 내 속에 들어 있는 온갖 불만과 불평을 부드럽게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맘 속 숨통을 틔우는 일로부터 시작될까?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고, 가능한 한 주어진 것에 만족할 수 있도록 맘을 수련할 필요가 있겠다. 노래를 많이 하고, 나를 위하여나 이웃을 위하여 화평한 맘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되면 좋겠다. 상황을 서로 바꾸어보면서 측은한 맘이 가득하도록 하면 좋겠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 원수처럼 되고, 어제의 원수가 오늘 친구처럼 되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는 것은 결국 본질상 사람은 좋고 나쁜 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이지 않던가? 그래서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하여 일단 내 맘 속을 평안하고 어떤 편견 없이 사람을 보고 만나게 되면 좋겠다. 나는 참으로 기도한다. 내가 교만하거나 잘났다고 뻐기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 말은 곧 다른 사람을 나처럼 귀한 사람으로 보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 속이나 그의 속에는 꼭 같은 신의 형상, 또는 부처, 아니면 내면의 빛이 들어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를 보고, 그를 볼 때 내 맘 깊은 곳에서 내가 믿는 하느님이나 부처를 보고 맞이하는 간절한 맘이 솟아나기를 바란다.

어린아이를 보고 나를 보면 얼굴 모양뿐만 아니라 분위기가 너무 다른 것을 확인한다. 어린아이들은 화내고 우는 얼굴도 예쁘고 혐오스럽지가 않다. 그런데 내 얼굴은 일부러 웃지 않으면 너무 굳어있고 딱딱하여 무섭게 보인다. 그래서 끊임없이 내 얼굴에 화기가 돌도록 하기 위하여 부드럽고 웃음 띄는 훈련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날이 갈수록 내 얼굴에서 웃음기가 돌도록 힘들여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것을 잃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려면 내 맘의 양식이 좀 더 풍성하고 알차야 되지 않을까?

그 일을 위하여 고전을 읽고 공부하고 생각하고 그것으로 나를 수련하는 일을 일상으로 하면 좋겠다. 적어도 나는 인류역사를 통틀어서 우리들의 스승이라고 하는 분들을 좀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 그러니까 소크라테스, 석가, 공자, 예수를 좀 더 가까이 하고 싶다. 아무리 바쁘고 어렵더라도 그분들의 말씀을 매일 읽고 묵상하고 내 삶에 끌어들여 내 정신의 양식으로 삼고 싶다. 이번 새해에는 위의 스승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상과 그분들의 삶을 좀 더 살피고 싶다. 그중 원효 스님, 화담 선생, 함석헌 선생의 글을 깊이 읽고 또 생각하고 따져보는 일을 하고 싶다. 특히 귀한 분으로부터 얻은 함석헌 선생의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오래도록 강의하신 ‘노자강좌와 장자강좌’ 녹음파일을 친구들과 함께 듣고 공부하고 싶다. 그러면서 그런 고전들과 생각들을 우리의 지금 삶과 연결시켜 되새김질하고 싶다. 이 모든 것은 내 혼자서 하기도 하겠지만 꼭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다. 그러려면 광고도 해야 하겠지?! 몇 분이 함께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여 평화의 기운이 온 누리에 쫙 퍼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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