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작가·대전문인총연합회장

우리 역사를 뒤돌아보면 지도자를 잘 만난 시대에는 크게 흥했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혼돈과 쇠락의 길을 면할 수 없었다. 그만큼 지도자는 나라 융성에 큰 영향을 주는 절대적 존재였다. 역사를 이끌어온 지도자 중 손꼽을 수 있는 최고의 지도자로는 정복의 위업을 달성해 국운을 번성케 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신라의 진흥왕, 백제의 근초고왕이 있고, 성군(聖君)으로는 국방과 함께 과학·문화 창달을 이뤄낸 조선시대 세종과 탕평책으로 개혁정치를 시도한 정조를 꼽을 수 있다. 반대로 나라를 어지럽게 하거나 몰락의 길로 가게 한 지도자로는 신라의 진성여왕, 고려 말 우왕·창왕·공양왕과 조선시대 연산군·광해군, 다듬어지지 못한 왕재(王才)의 몸으로 등극해 한 시대의 제물이 된 강화도령 철종을 들 수 있다. 그들은 혼군(昏君)으로 지칭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물론 절대 권력이 허용된 세습왕조시대 국운의 번성이나 백성의 행복을 오늘날과 단순 비교할 순 없다. 하지만 국가나 민족이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명운이 크게 달라진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세습체제의 폭정으로 인해 북한 인민이 불행해지고 있는 모습이나, 지금 대한민국이 불통으로 일관해 오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를 자초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지도자의 역량이나 철학이 얼마나 중요하고, 국민의 삶의 질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게 된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차기 대통령에게 바라는 덕목 중 ‘소통’이 으뜸을 차지하고, 두 번째가 ‘도덕성’, 세 번째가 ‘리더십’이다. 절대 권력이나 권위 중심의 리더십은 이젠 오래 전 유물이 돼버렸다. 한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에게 국민은 도덕성을 유지하면서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해 줄 것을 원하고 있다. 즉, 현재는 반대세력까지도 끝까지 설득하면서 상호 원활한 소통을 하고, 봉사와 헌신하는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오는 지도자를 원하는 시대다.

절대군주시대는 백성 대부분이 무지하고 민도가 낮았으며 소박했다. 따라서 배를 채워주고, 따스한 옷을 입혀주고, 다리를 편히 뻗을 수 있게 할 정도면 됐다. 하지만 그런 시대에도 어진 임금은 백성들을 하늘로 여겼고, 애민정신으로 그들과 소통하면서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한 군주는 현군(賢君)으로서 후세에 이르기까지 칭송을 받고 있다. 그에 비해 백성을 가볍게 여기고, 충성심만을 강요하면서 정치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른 군주는 폭군으로서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는 지도자가 됐다.

이런 역사적 교훈을 잘 알면서도 오늘날의 지도자가 국민과 소통을 하지 않고, 공권을 사유화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만을 휘두르려 한다면 당연히 그는 몰락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연산군이 장록수의 치마폭에서 놀아났고, 광해군이 개시라는 여인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처럼 지금 박근혜정부에서는 최순실이 등장해 잘못된 역사의 전철을 밟고 있는 현실이 우리를 절망케 한다.

한반도 북쪽에선 왕정시대의 절대 권력이 세습되고 있고, 남쪽에서는 화합하고 소통하기보다는 이념 간의 갈등, 계층 간의 불협화음과 혼란을 야기하면서 국정을 혼미하게 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게 우리 한민족이 처한 현실이다. 그러니 대통령만이 정국을 혼미하게 한 것은 아니었다. 일례로 수학여행 중 일어난 세월호 사태를 여야가 지혜롭게 수습하지 못하고, 정치 이슈화해 정치 발전에 발목을 잡은 것은 아주 큰 오류를 범한 행위였는데, 최순실 사태가 터지자, 때는 이때다 하면서 갈등을 고조시키며 세상을 뒤집겠다는 듯 태극기 부재(不在)의 광화문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들의 정체성이 의심스럽다. 이제는 법 이론에 맡겨도 될 텐데 굳이 헌법재판소 앞에까지 나와 아예 재판관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겠다는 몸짓으로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만약 이 사태를 주도하고, 선동적인 언행을 계속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그는 우리에게 비전을 주는 지도자가 아니다. 그런 이는 제거돼야 한다. 정권 탈환에만 눈이 어두운 지도자는 정권을 쟁취했을 때 국민은 없고 소통은커녕 권력만 휘두르는 상황을 다시 연출할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잠룡’이란 이름으로 꽤 많은 이들이 군웅활거하고 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우리에게 확실한 비전을 줄 지도자가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그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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