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리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며 “새해에는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자”는 말을 건넨다. 아침에 만날 때 “조반 드셨나요?”라는 말은 한민족 5천 년 역사 속에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다정다감한 언어다. “언제 커피 한 잔 할까?” 보다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은, 초면이나 구면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통하는 부담 없는 인사말이다.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할 때, 정치적으로 합의를 도출할 때도 밥상 앞에 함께 앉는다. 집에서 가족 모두가 함께 식사하는 모습은 드라마 속, 화목한 가정의 모델이다.

그러나 같이 먹어야 할 식구가 없는 싱글은, 아침은 불가피하지만 하루 한 끼는 대화 벗을 찾으면 된다. 박근혜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불러만 준다면 밥도 얻어 먹고 청와대 구경도 하고 민심도 전해주고 누가 마다하겠는가? 이것이 ‘밥상머리 정치’다. 그러나 대통령을 싱글이라고 인정해도 너무 심했다. 1년 내내 거의 ‘혼밥’만을 했다는 것이다. 대통령 딸로 태어나 부모를 여읜 이후 사람들과 함께하는 생활에 익숙지 못하기 때문인지 혼자 밥먹는 습관, 한 사람에게만 의지하는 결과로, 소통 부재, 불통(不通)으로 이어져 오늘의 사태를 야기했다. 일반인이야 ‘혼밥’을 해도 누가 관심이 없지만, 대통령은 공인(公人)으로 각계각층을 만나 민심을 청취해야 국정의 기본을 마련할 소통(疏通)이 시작되지 않겠는가? 지난 2012년 8월,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경선이 끝난 뒤 당시 대선후보로 다닐 때 언론에서 불통이라는 지적에 취재 기자 30여 명과 함께 식사를 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당시 박 대통령은 “젊은 층과 소통을 위해선 찢어진 청바지도 입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후에는 “도로 불통(不通)”이 되면서 ‘혼밥족’으로 돌아왔다. 청와대 전 조리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세월호 참사 당일도 평소처럼 관저(사저)에서 TV를 보면서 혼자 점심과 저녁 식사를 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지방 순방을 갈 때 조리장이 따라가 혼자 먹을 수 있는 유부초밥과 샌드위치를 준비한다고 한다.‘혼밥’ 습관으로 심지어 외국 순방 때도 수행원들을 모두 물리치고 ‘혼밥족’이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기자 재직 때, 취재를 위해 지방에 가면 일부러 ‘맛집’을 찾아 그곳의 특산물을 취재팀과 함께 먹고 오기도 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국정농단의 한 주역이었던 한 아낙네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밥만은 함께 먹지 않았다고 하니 ‘친박’보다 더한 ‘진박’ 같은 ‘진 혼밥족?’. 대통령이 ‘혼밥’을 한다면 그건 ‘빵점’이다. 함께 하더라도 매일 똑같은 사람과 하는 것도 학점으로 하자면 “F” 재수강 대상이다. 하루 한 끼 4명만 함께해도 1년이면 1천 4백여 명! “조문(弔問)정치”라는 말이 있다. 밥상머리 정치야말로 최고의 정치가 아닐까?

권선택 대전시장은 민심 청취를 위해 매주 한 차례 아침 일찍 식당으로 10여 명씩을 초청, 지난해에만 50여 차례에 걸쳐 3백여 명을 만나 식사를 함께했다.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업체 페이스북은 신축한 1층의 거대한 사옥을 원룸 공간으로 설계, 말로만 부서 칸막이는 물론, 물리적인 장애물까지 다 없애고 완전히 뚫린 개방형 공간으로 만들었다. 소통의 설계를 한 것이다. 햄버거 가게에서 입안 가득 넣어 먹는 대통령을 보고, “대통령도 나와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미국의 서민들! 백악관에서 참모들과 식사하며 파안대소하는 모습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부럽다. 지난 2015년 11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방한,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첫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두 정상의 오찬 없는 회담을 두고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냉랭한 분위기가 주를 이뤘지만 일부에서는 한 나라의 정상에게 식사조차 대접하지 않은 것은 지나쳤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혼밥’을 하는 대통령이 “오늘도 혼자 먹을 수 있겠네!” 하고 쾌재를 부른 게 아니냐는 비아냥(?)도 들린다. 청와대 문턱이 높아 국민이 구중궁궐로 인식하고 대통령이 비선에 의지하면서 장막을 치니 소통이 될리 만무하다. 대통령이 언론인들과 함께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국정을 홍보하고 각계각층의 직업을 접하는 이들에게 민심을 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혼밥’을 고집, ‘대통령 손톱 밑의 가시’를 뺄 기회를 놓치고 오늘의 불행한 결과를 낳았다. “이번에는 혼자 드시지 마시라!”고 건의한 참모들의 건의를 듣고 지난 새해 아침 14명의 참모와 함께 떡국을 들며 덕담을 나눴다는 뉴스가 귀를 의심케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