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50대 서기관이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사주를 받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56·구속 기소)의 압력에 맞서 정부 예산이 새나가는 것을 막은 사실이 9일 확인됐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주인공은 문체부 정준희 서기관(52). 김 전 차관은 정 서기관에게 “인사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협박까지 했지만 통하지 않자 당초 내렸던 지시를 수정해 재차 정 서기관을 압박했다. 하지만 정 서기관은 끝내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김 전 차관은 지난해 2월 문체부 체육진흥과 소속 정 서기관에게 “K-스포츠클럽 운영에 문제가 있으니 이 클럽들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개선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김 전 차관의 속내는 K-스포츠클럽 운영권을 최순실 씨가 사실상 지배하고 있던 K스포츠재단에 넘겨 연 130억 원 규모의 관련 예산을 주무르려는 것이었다.

김 전 차관은 당시 정 서기관에게 “국민생활체육회(현 대한체육회와 통합)가 아닌 별도의 종합지원센터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강조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K-스포츠클럽 사업은 문체부의 지원을 받아 국민생활체육회가 기초지방자치단체와 교육기관 등 민간단체를 사업자로 선정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정 서기관은 “컨트롤타워가 새로 생기면 사업 전체가 특정 민간단체에 넘어가게 된다”며 거부했다. 김 전 차관은 정 서기관이 지시를 따르지 않자 수차례 불러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고 강요했다. 또 “(지시를 안 따르고 버틸 거면) 문체부를 나가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고 한다. 정 서기관은 “당시 받은 충격과 스트레스로 안면 마비가 오고, 원형탈모 증상까지 생기는 등 극심한 후유증을 겪었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은 이후 전략을 바꿔 ‘거점형 K-스포츠클럽 사업’을 내세워 K스포츠재단을 끼워 넣을 새로운 계획을 짰다. 김 전 차관은 한 거점당 3년간 24억 원을 지원받도록 계획을 세우고, 클럽 사업자를 수의계약으로 선정할 수 있게 절차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정 서기관은 “사업자는 공모로 선정해야 한다”며 또다시 버텼다.

이런 과정에서 ‘미운털’이 박힌 정 서기관의 이름은 검찰이 압수한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의 수첩에도 나온다. 김 전 차관뿐 아니라 청와대도 정 서기관을 곱지 않게 보았다는 걸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김 전 차관은 검찰 수사에서 “돌이켜 보면 정 서기관이 (내 지시에) 반대해 준 게 정말 고맙다”면서 “우리 계획이 그대로 됐다면 나는 죽을 뻔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서기관 덕분에 처벌을 받을 범죄 혐의가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정 서기관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소극적으로 (김 전 차관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방어한 것뿐이다”고 말했다. 1985년 9급 공채로 공직에 입문한 정 서기관은 1990년부터 문체부에서 근무했다.

/주홍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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