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육근상 시집 '만개' 출간
해학·기지 철철 넘치는 시어로
삶에 내재된 수 많은 감정 표현

만개 滿開

꽃놀이 갔던 아내가
한 아름 꽃바구니 들고
흐드러집니다

선생님한테 시집간
선숙이 년이
우리 애들은 안 입는 옷이라고
송이송이 싸준 원피스며 도꾸리
방 안 가득 펼쳐놓았습니다

엄마도 아빠도 없이
온종일 살구꽃으로 흩날린
곤한 잠 깨워
하나하나 입혀보면서

아이 예뻐라
아이 예뻐라

‘백석’, ‘이용악’ 시 정신을 이은 빼어난 소리의 시인 육근상이 시집 ‘만개’(도서출판 솔)를 출간했다.

토속어의 순박함을 살려 가공하지 않은 언어의 순박함을 시에 담은 그는 시 안에 전율 넘치는 감동을 선사하면서 또 한편으로 애잔한 시상 전개로 한 맺힌 전통 서정시의 치명적인 감동도 전해준다.

육 시인의 시집에는 해악과 기지가 등장한다. 스마트폰의 사용 맥락에서 ‘오렌지’와 ‘ㅅㅂㄴ’ 이란 시어로 유발되는 웃음 속엔 사람 사이의 오해와 사랑, 더 나아가 인간 삶에 내재된 감정의 반어와 역설이 함축돼 있다.

이번 시집에는 대표시인 ‘만개’를 비롯해 ‘문’, ‘별을 빌어’ 등 50여 편의 작품이 총 4부로 구성돼 있으며, 임우기의 해설 ‘자연으로서의 시’와 ‘만개 읽기의 즐거움’이라는 발문과 낱말풀이가 담겨있다.

고형진 문학평론가는 “시인이 재구현해 낸 사물의 이름에 붙은 충청도 토착어가 이렇게 아름답고 정감 넘칠 줄이야. 육근상 시인을 통해 우리의 기름진 언어자원은 또 한 번 크게 확장되고 있다”라고 평했다.

육 시인은 “살아내는 동안 큰 슬픔과 왜곡, 그리고 분노가 있었다. 시라도 있었으니 망정이지 내가 무슨 재주로 이 허망한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겠나. 주목받지 못한 사소한 것들에게 ‘만개’라 말 걸고 이름 붙여 보듬어 내보낸다. 삶의 원동력인 자연과 벗들로 인해 시집이 나왔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1960년 대전에서 태어난 육 시인은 1991년 ‘삶의 문학’에 ‘천개동’ 외 5편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고, 2013년 시집 ‘절창’을 상재한 바 있다.

강선영 기자 kkang@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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