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조 ‘귓도리져귓도리’ 외

 

귓도리 져귓도리 에엿부다 져귓도리

어인 귓도리 지는달 새난 밤의 긴소릐 쟈른소릐 절절(節節)이 슬픈 소릐 제 혼자 우러녜어 사창(紗窓) 여왼 잠을 살드리도 깨우난고야

두어라 제비록 미물이나 무인동방(無人洞房)에 내뜻 알리는 저뿐인가 하노라

귀뚜라미, 저 귀뚜라미, 불쌍하구나 저 귀뚜라미. 어찌된 귀뚜라미인가, 지는 달, 새는 밤에 긴 소리 짧은 소리, 마디마디 슬픈 소리. 저 혼자 울고 울어, 여인의 방에 설풋 든 잠을 잘도 깨우는구나. 두어라, 제 비록 미물이지기는 하나 홀로 있는 방, 내 뜻 알아 줄 이는 저 귀뚜라미뿐인가 하노라.

사별했을까. 돌아오지 않고 있을까. 막 새벽으로 넘어가는 삼경, 사창의 무인동방에서 몹시도 임을 그리워하고 있는 이 여인. 새벽녘에 이르러서야 설핏 잠이 드나 이도 귀뚜라미가 잠을 깨운다. 미물이기는 하나 슬피 우는 저 귀뚜라미가 참으로 불쌍하단다. 설핏 든 잠을 살뜰히도 깨우다니 내 뜻을 알아주는 이는 그래도 귀뚜라미뿐이란다. 도대체 님은 누구이며 님을 그리워하는 이 여인은 또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게만 하니 명시조일 수밖에 없다. 김천택의 ‘청구영언 1728년’의 만횡청류에 실려 있다.

바람도 쉬여 넘난 고개 구름이라도 쉬여 넘난 고개
산진(山眞)이 수진(水眞)이 해동청(海東靑) 보라매도 다 쉬여 넘난 고봉장상령(高峯長城嶺) 고개
그 너머 님이 왓다 하면 나난 아니 한 번도 쉬여 넘어가리라

바람도 쉬어 넘는 고개 구름이라도 쉬어 넘는 고개. 산지니, 수진니, 송골매, 보라매라도 쉬어 넘는 높은 봉우리, 긴 성, 영 같은 고개. 그 너머에 임이 왔다고 하면 나는 한 번도 안 쉬고 넘어가리라. 산진이는 산에서 자란 야생매이며 수진이는 사람의 손으로 길들여진 매이다. 해동청은 매산냥에 쓰이는 참매인 송골매, 보라매는 1년이 안 된 새끼를 잡아 길들인 사냥 매이다.

바람도, 구름도 쉬었다 가는, 산지니, 수지니, 해동청, 보라매라도 쉬었다 넘는 불가능한 고개도 넘을 수 있다니 임에 대한 사랑이 어떤지를 짐작할 수 있다. ‘청구영언’, ‘해동가요’, ‘가곡원류’, ‘병와가곡집’ 등에 실려 있다.

서방님 병들여 두고 쓸 것업셔
종루(鐘樓) 져재 달래 파라 배 사고 감 사고 유자사고 석류 삿다. 아차 아차 이저고 오화당(五花糖)을 니저발여고자
수박(水朴)에 술 꼬자노코 한숨게워 하노라

서방님이 병 들어 돈이 될 만한 것이 없어 종루 시장에서 머리카락을 팔아 배 사고 감 사고 유자 사고 석류를 샀다. 아차 아차 잊었구나. 오화당을 잊었구나. 수박에 숟가락 꽂아놓고 한숨을 짓고 있다.

달래는 다리머리로 여인들이 머리숱이 많아 보이기 위해 자신의 머리나 남이 머리를 땋아 덧대어 드리우던 일종의 가발이다. 오화당은 다섯 가지 색깔의 둥글납작한 중국 사탕을 말한다.

병이 든 남편을 위해 머리를 팔아 요것저것 먹을거리를 샀다. 한시라도 남편에게 먹이고 싶어 서둘렀다. 어쩌랴 남편이 그렇게도 좋아하던 오화당을 빠뜨린 것이다. 극적인 아내의 음성이 생동감 있고 위트 있게 표현된 명문장이다. 남편을 위한 아내의 마음이 찡하게 진한 여운으로 다가온다. 김수장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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