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아픔이 있어야 진실을 안다' … 세대에 전하는 깊은 울림
신영복, '아픔이 있어야 진실을 안다' … 세대에 전하는 깊은 울림
  • 김미영 기자
  • 승인 2017.01.17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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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성미가엘성당에서 열린 故 신영복 선생 1주기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신영복 교수 1주기 추도식 … 야권 인사 대거 모여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1주기 추도식이 15일 서울 구로구에 소재한 성공회대 성미가엘 성당에서 열렸다.

이날 영하 10도까지 내려간 혹한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시민들이 자리를 했으며 야권 주요 인물들이 집결했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위시로 안희정 충남도지사, 심상정 정의당 대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이 발걸음을 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추도식 행사가 끝난 뒤 취재진들이 사드 배치와 관련돼 취소하기 어렵다는 자신의 발언의 진위를 묻자 "다음 정부에서 충분히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또 외교적 노력도 기울이고 해서 합리적인 결정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또 "사드는 안보와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득과 실이 교차한다"며 "내부적으로는 국회 비준 등의 공론화 과정이 필요했고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외교적 설득 노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과정 없이 미국의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는 이른바 '쓰리 노(3NO)'로 일관하다가 갑자기 졸속으로 사드(배치)를 결정했다"며 "국민은 준비 없이 갑작스러운 결정을 맞이했고 중국과 러시아는 더 반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한편 신영복 교수는 1941년 경남 밀양 생으로 아호는 '쇠귀'다. 지난해 1월 75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신영복 교수는 1963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육군 장교로 임관해 교관을 지냈고 숙명여대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면서 무기징역을 받아 구속됐다.

20년의 수감생활을 하다 1988년 광복절 특사로 특별가석방 출소했다. 옥중 시절의 서한을 모아 정리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출간하자마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지금도 꾸준한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출소 후 성공회대 경제학부 교수로 2006년까지 재직했으며 진보진영의 대표 지식인으로 잘 알려져있다.

신영복 교수가 20년 동안 옥고를 치르게 된 통일혁명당 사건은 박정희 정부 시절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지하당조직사건이다. 158명이 검거돼 50명의 구속자를 낸 1960년대 최대의 공안 사건으로 김종태를 비롯한 주범들은 사형을 당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통일혁명당이 김종태가 월북해 북한의 지령과 자금을 받고 결성된 혁명 조직이라 발표했다. 주범은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로 규정했고 이들은 월북해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고 밝혔다.

당원인 이진영, 오병헌은 1968년 4월 22일 월북해 교육을 받던 중 1968년 6월 말 통혁당 사건이 터지자 북한에 머물렀고 이 과정에서 신영복 교수는 김종태, 김질락 등과 두터운 친분이 있고 사건에 깊숙이 가담한 것으로 지목됐다. 후에 신영복 교수는 이들과 일면식도 없었고 사건에 크게 관여한 것도 없는 조작된 사실이 밝혀졌다.

신영복 교수는 1심과 2심에서 사형,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중앙정보부는 암호를 해독해 이문규를 구출하러 북이 파견한 공작선을 격침시켜 2명을 생포했다고 밝혔다. 이들도 통혁당 관련자로 사형을 언도했다.

박성준은 자신의 처 한명숙을 포섭하는 등의 혐의로 체포돼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류낙진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으나 이후 20년 형으로 감형됐다. 박정희 정권은 통일혁명당 사건 증거로 무장공작선 1척, 고무보트 1척, 무전기 7대, 기관단총 12정, 수류탄 7개, 무반동총 1정과 권총 7정 및 실탄 140발, 12.7mm 고사총 1정, 중기관총 1정, 레이더 1대와 라디오 수신기 6대, 미화 3만여 달러, 한화 73만 원 등을 압수했다고 발표했다.

신영복 교수는 서예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어머니의 모필 서한에서 느껴지는 서민적 체취와 정서를 독특한 서풍에 담아내었다는 평가다.

소설가 조정래의 '한강' 표지에 친필을 담았고 소주 '처음처럼' 포장지와 교보문고 신용호 회장의 어록인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문재인 전 대표의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문구에 그의 글씨체가 사용됐다.

처음처럼은 그가 쓴 책의 제호로도 사용됐다. 나중 두산주류BG(현 롯데주류)에서 동명의 소주를 출시하면서 그의 글씨를 상표로 사용했다. 그의 작품이 상업적으로 사용된 첫 번째 사례로 서민의 술인 소주에 자신의 작품이 사용되는 것을 흔쾌히 허락하면서 저작권료 대신 성공회대에 장학금 1억 원을 요청해 전액을 기부했다.

신영복체는 쇠귀체, 어깨동무체, 연대체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신영복체라는 이름으로 폰트가 개발돼 유료로 판매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12월 21일에는 많은 사람과 글씨를 나누고 싶어 했던 그의 유지를 받들어 개인사용자에 한해 신영복체를 무상으로 배포하기 시작했다.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기쁨보다는 슬픔이, 즐거움보다는 아픔이 우리들로 하여금 형식을 깨뜨리고 본질에 도달하게 하며 환상을 제거하고 진실을 바라보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언급이 있다. 그는 항상 모든 발전에는 아픔이 뒤따르고 이러한 아픔의 과정만이 성숙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한다며 입버릇처럼 말했다는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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