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미술관 3월 26일까지 '돌, 나무, 종이' 소장품展

이응노미술관은 오는 3월 26일까지 종이, 나무, 섬유, 돌, 세라믹 등 재료별 특성으로 이응노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소장품전 ‘돌, 나무, 종이’ 전시를 연다. 이번 전시에는 특히 1965년작 ‘마스크’와 1963년 문자추상 회화 ‘옥중에서’를 대중에게 처음으로 공개한다.

이응노는 ‘용구의 혁명’을 언급하며 창작 방식을 대담하게 실험하는 새로운 지성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으며, 1959년 독일 ‘카셀 도큐멘타’에서 다채로운 재료 사용을 통해 순수 형식 창조로 변화해가는 모더니즘 미술의 흐름을 간파했다. 결국 재료의 혁신을 통해 모더니즘 미술에 접근하는 것이 당시 이응노의 중요한 미학적 과제였다. 이 소장품전은 재료의 물질성과 마티에르에 주목해 재료의 특질을 순수 형태로 끄집어내는 이응노의 창작 방식에 주목한다.

이응노에 영향을 끼쳤던 앵포르멜 사조는 물질에 내재한 잠재적 형상에 주목하고, 재료의 물질성을 내세우며 형태 해체를 시도한 예술이다. 장 뒤뷔페, 포트리에와 같은 화가들이 타르, 시멘트, 모래, 바니시 등의 재료를 통해 회화 표면의 거친 마티에르와 물성을 강조해 비정형의 미학을 주창했듯이 이응노는 종이, 풀, 섬유의 재질을 활용해 평면에 다양한 물성과 질감을 구현했고 비형상의 추상으로 발전시켰다. 이런 방식의 재료 활용은 조소와 같은 입체작업에서도 발견된다. 나무, 돌, 세라믹을 사용한 작업은 사물을 모방하기보다는 재료 자체의 특성을 강조하는 20세기 조각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미술사적 문맥에서 크게 유기체적 생기론, 원시적 애니미즘, 앵포르멜, 기호&문자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유기체적 생기론이란 장 아르프, 헨리 무어처럼 생물체의 외형이나 자연을 암시하는 유기적 곡선을 통해 사물 속에서 생명력을 찾는 작품을 포괄한다. 이응노의 세라믹 작품을 이런 유형으로 분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원시적 애니미즘은 자코메티, 브랑쿠시가 아프리카 미술에서 조각의 생명력을 발견하였듯이, 물질 속에 내재한 원시적 힘을 찾아 단순 재료를 특수한 사물로 거듭나게 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토템’을 비롯한 이응노의 나무, 돌 조각은 그 원시적 형태를 통해 강한 표현력을 발산한다. 특히 나무에 전각의 장법을 활용하거나, 종이로 쑨 풀죽으로 만든 작품엔 한국적 감수성이 짙게 배어 있다. 표현성을 강조하는 이런 경향은 앵포르멜의 충동적 이미지와도 연관지어 볼 수 있다. 또한 문자 형태를 응용한 조각에서는 기호를 가지고 추상을 구성하는 이응노의 일관된 관심을 읽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시도의 바탕에는 재료의 특성에 감응하는 작가의 눈과 손이 있다는 점이다. 이번 소장품전은 돌, 나무, 종이, 세라믹 그리고 그것들이 공간 속에서 관객과 만나 일으키는 예술적 감흥에 초점을 맞췄다. 이응노미술관장 이지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와 재료가 맺는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그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상상해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선영 기자 kkang@ggilbo.com

전시는 총 4개의 섹션으로 재료별로 각 전시시를 구성했다. 이응노가 여러 가지 재료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각 재료만의 특질이 어떤 조형성을 나타냈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1전시실 - 종이와 패브릭

한지를 비롯한 종이는 이응노가 평생 사용한 재료다. 이응노는 종이를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재료 이외 종이가 가진 물질성과 마티에르를 작품 창작에 적극 활용했다. 대표적으로 1960년대에 창작한 종이 콜라주 시리즈는 잡지, 신문, 한지를 구기고 찢어 붙인 뒤 그 위에 살짝 색채를 덧붙인 작품이다. 이응노는 종이의 불규칙하게 찢어진 단면, 구겨진 표면 굴곡, 눌리거나 접힌 단면을 추상적, 구성적으로 활용해 평면 위에 부조 형상을 창작하는 독창성을 보였다. 20세기 초 피카소, 브라크가 콜라주를 시작한 이래 서양의 종이 콜라주는 서로 다른 이미지를 결합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사용됐지만 독특하게도 이응노는 종이의 질감, 물질성에 주목해 종이를 마치 조소의 재료처럼 사용했다.

▲2전시실 - 세라믹

이 세라믹 작품들은 사물을 묘사한 전통 조소가 아니라 재료의 특성 자체가 주제가 되는 무의미, 무형태의 작품이다. 이응노는 1980년대 프랑스 국립 세브르 도자공장과의 협업을 통해 접시를 비롯한 많은 세라믹 작품을 남겼다. 이 전시실에는 접시 작품은 제외하고 순수 조형물만 골라 배치했다. 세라믹은 차가운 표면과 매끈한 질감을 가진 딱딱한 물질이지만 불에 굽기 전 작가가 흙으로 빚은 부드러운 형상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매체다. 손으로 조물거리거나 흙을 만져 형태를 빚는 과정이 마치 작가의 인장처럼 작품의 겉표면에 남아 제작과정을 유추해보거나 손이 직접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곡선과 형태에 주목하게 된다.

▲ 3전시실- 나무

목조 작품들은 나무 고유의 거친 재질감을 앵포르멜 형상에 이용하거나 혹은 매끈하게 가공해 생물체 형태를 구성하거나 ‘발견된 오브제’ 개념을 활용해 나무토막 자체를 작품으로 생산하는 등 다양한 양식의 작품이 뒤섞여 있다. 대체적으로 1960~70년대 현대조각의 흐름을 반영한다. 여기 놓인 대부분의 목조는 사물의 모방이 아니라 나무 자체가 지닌 물성, 질감을 주제로 삼고 있다. 나무는 끌과 정으로 깎은 표면에서 쉽게 앵포르멜적 특성을 찾아볼 수 있는 재료며, 나뭇결의 곡선이나 끌로 파낸 거친 표면 그리고 잘린 단면을 그대로 비정형 오브제로 활용할 수 있는 재료다. 이응노의 나무 조각은 크게 몇 가지 주제로 분류할 수 있는데 재질을 다루는 방식에 따라 작품의 감정적 요소들이 달라지는 경향을 관찰할 수 있다.

▲ 4전시실 - 돌

돌을 재료로 삼은 작품은 이번 전시 중 가장 적지만 돌을 활용하는 방식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돌은 이응노에게 최초로 조각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재료다. 이응노는 1955년 경주 여행에서 ‘금강역사’ 등 신라시대의 불교조각을 접하고 큰 감명을 받는다. 다루기 힘든 돌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토실토실한 살’과 ‘따뜻한 체온’을 가진 인체를 조각해낸 신라인들의 솜씨에 감명받은 이응노는 이후 유럽으로 건너간 후에 본격적으로 입체 작업에 매진하게 된다. 여기 전시된 석조 작품들은 본격적인 조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돌 자체를 예술적으로 활용한 작품이라 볼 수 있다. 깎거나 쪼아 형상을 만들기보다는 돌의 본래 형태를 보전하며 그 표면에 색을 칠하거나 문양을 새겨 넣어 장식적 기법을 덧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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