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한파가 몰려오는 기간에 수도권 일부 골프장들은 일정 기간 휴장을 한다. 휴장기간에는 1년 동안 미루어 왔던 시설 개보수나 벤치마킹(Benchmarking)을 한다. 필자도 수년 전 휴장기간을 이용하여 단체로 필리핀 세부 필리피노골프클럽을 다녀왔다. 필리피노GC은 세부시티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데 호텔에서 버스로 출발하여 골프장까지 약 40분 정도 소요된다. 버스가 클럽하우스에 도착하니 주변에 있던 캐디들이 한꺼번에 모여 골프백을 내려주었다.

여기가 바로 필리피노GC 클럽하우스구나 하고 하차해 보니 의외로 클럽하우스가 단출했다. 뜻밖에도 실내가 없다. 그러니 에어컨이 없을 수밖에! 이렇게 외부에 노출되어 있으니 시원하진 않았다. 창문도 없이 오픈되어 있으며 앉을 곳도 밖에 있고 식사도 밖에서 한단다. 하지만 산속에 있어 천장에 달린 선풍기가 돌아가니 앉아서 쉬다 보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산꼭대기에 위치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 같다.

골프장 관리 상태는 좋았다. 업다운(up-dawn)도 적당히 있어서 그린 라인 또한 맞는 듯 아닌 듯 재밌기도 하면서 어렵기도 하고, 산속에 있지만 우리나라 산과는 달리 정글 같은 미묘한 느낌이 들었다. 1번 홀은 확 트였고 홀을 갈수록 도그레그(Dogleg) 홀이 많아진다. 라운드를 하다 보면 동네 꼬마들이 와서 아무 때나 나이샷을 외치며 공을 판다. 보기 퍼팅을 해도, 공이 안 들어가도 나이샷을 외치는 아이들!

습해도 덥거나 하지는 않으며 그늘 밑에 있으면 나름 시원하다. 산속이라서 땡볕 밑에 있는 경우가 아니고선 너무 덥지도 않았다. 그린이나 페어웨이나 군데군데 탄 흔적도 있지만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줄 만하다.

필리피노GC 캐디들은 전체적으로 친절했다. 1인 1 캐디로 진행되고 고객은 키트를 타고 캐디는 걸어 다니는데 후반 홀로 갈수록 캐디들이 안쓰러워진다. 코스는 재미있었다. 필자는 공도 잘 안 맞고 고생도 했지만 재미있게 라운드해서 필리피노GC가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코스 주변으로는 거주 인들의 안전을 위해 담장을 쌓아 놓았다. 관리 상태도 전혀 나쁘지 않아서 필리핀 교민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필자는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었다. 그런데 라운드를 다 끝내고 버스에 승차하는 중에 차에 오르지 못한 일행 일부와 많은 캐디가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실랑이를 하며 버스 출발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래서 일행 모두는 버스에서 하차하여 캐디들의 사연을 듣고 보니, 우리 일행이 현지 가이드 말을 듣고 캐디피를 사전에 일괄 지급했는데 캐디마스터에게 준비용을 회수하여 각자 팀별로 캐디 개인에게 지급해달라고 담당 캐디들이 요청한 것이다. 가이드에게 내용을 알아보고 조치를 하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동안 중간관리자나 캐디마스터가 관광객의 캐디피를 일괄로 받아서 일부는 공제하고 나머지 금액을 주다 보니 캐디들이 불만을 표출하면서 버스를 못 가게하고 캐디마스터에게서 캐디피를 회수하여 달라는 요지였다. 캐디마스터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캐디들이 결집한 것이다.

캐디마스터가 올 때까지 10여 분 이상 기다리다 가이드를 통해 회수하여 캐디 각자에게 지불해 주었다. 그동안 이곳에서는 관광객을 상대로 이런 경우가 수차례 있었고 캐디들이 캐디마스터가 잠깐 자리를 비운사이 집단 시위로 발전한 것이다. 캐디들이 우리 일행버스를 못 가게 가로막을 때는 당황스럽고 짜증스러웠지만 우리 일행이 그동안 병폐가 되었던, 캐디들의 불이익을 해결해 주고 권익보호를 해준 것에 대해 마음이 뿌듯하고 흐뭇하였다. 해결을 해주고 나니 많은 캐디가 땡큐를 연발하면서 90도로 두 손 모아 인사를 하는데 그 모습을 보며 한국 사람으로서의 긍지와 골프장의 CEO로서 흐뭇한 자부심을 가졌고 기분이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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