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설을 두 번 쇠기도 하였다. 행정차원의 설과 민속차원의 설, 하나는 하는 시늉의 설과 하나는 진지하게 쇠는 설이었다. 이러다 보니 설을 두 번 쇠는 아주 번거롭고 우스운 일이 벌어졌다. 더 우스운 것은 이렇게 두 번 쇠는 것을 벌로 처리하는 일이었다. 세계와 함께 가야 한다는 의미로 양력설을 주장하던 정부의 방침은 오래도록 내려온 전통을 이기지 못하고, 지금은 음력설을 진짜 설로 치게 됐다. 차례를 지내거나 성묘를 하는 것은 옛날에 비하여 현격하게 줄어들었고, 세배를 하는 관습은 집안 에서만 있을 뿐 어른이나 스승을 찾는 것은 지극히 드물어 졌다. 그런데도 두 설을 지내는 것은 아직도 남아 있다. 특히 ‘송구영신’이란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양력설 때다. 연하장을 보내고, 새해에 복을 많이 받으라는 인사 따위는 양력설 때 많이 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명절로 지내는 것은 음력으로 돌아갔다. 이런데도 좀 어정쩡한 것이 있다.

어느 때 사람들에게 축복하고, 덕담을 나누고, 인사를 하여야 할까? 좀 인색한 맘으로는 한 번에 끝냈으면 좋겠고, 좀 넉넉한 맘이라면 두 번 다 덕담선물을 보내기도 한다. 물론 새해맞이는 양력설에 한다. 아마도 그때는 차례를 지내는 것이 적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양력설은 해맞이를 하는 때, 음력설은 식구들이 함께하면서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정리된 듯이 보인다. 어느 것이 진짜 설일까? 형식논리는 참 답답하다. 어려서나 지금이나 내게는 이 설이라거나 어떤 날이라는 것을 기념하고 즐기는 것이 매우 낯설다. 그것을 진지하게 맞이하기가 매우 어색하다. 특히나 새해라는 것에 이르면 더하다. 몇 억 년 전부터 그렇게 뜨고 지는 해요 그날인데, 거기에다가 한 날을 잡아 ‘새해’ ,‘새날’이라고 하니 참 어이가 없단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없다면 내 삶이 더 풍부하고 아름다웠을까? 결코 그럴 것 같지도 않다. 매년 찾아오고 또 찾아오는 그날이지만, 나 자신은 또 매년 달라진다. 그래서 어느 날인가부터는 정말로 낡은 것은 잘 보내고, 새 것은 잘 맞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날이요 그해이지만, 거기에 어떤 의미를 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그럴 것이다. 아마도 새날 새 아침에 새로운 어떤 각오 같은 것을 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꼭 짚어서 말하지 않더라도, 또 표 나게 아주 단단히 나타내지는 않더라도 분명히 어떤 결심을 하거나 간절히 바라는 것을 가지기는 할 것이다. 나도 그렇다. 이상스럽게 이번 설에 나에게는 몇 가지 그림이나 조각이나 얼굴이나 노래가 떠올랐다.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골리앗과 대결하던 ‘다윗상’과 ‘반항하는 노예’,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갈보였던 여인’, 여러 곳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과 세월호 침몰 참사자들을 생각하는 종합사진과 천막들, 파도처럼 출렁이는 촛불과 그 너머로 보이는 청와대, 아무런 감정 없이 거짓말을 숨 쉬듯이 하는 얼굴과 약삭빠르게 눈 돌리면서 온갖 계산에 여념이 없는 군상들의 얼굴, ‘억울하다’고 소리치는 나라를 뒤흔들고 어지럽게 했던 여인의 얼굴과 억울하다는 말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고 정말로 억울하게 죽어갔거나 폐인이 되어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얼굴, 그것들을 다 덮는 저 멀리 철석거리는 파도 너머, 아니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처연한 얼굴, 얼굴 얼굴들.

거기에 더하여 더 많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트럼프, 시진핑, 푸틴, 아베, 김정은, 박근혜 따위들. 싸드, 핵실험, 군사위성, 브렉시트, 무역장벽과 이동장벽. 오로지 내 나라 사람들만을 위하여 정책을 펼치겠다는 시대에 거꾸로 가는 정책에 환호하는 군상들. 이것들은 모든 것을 경쟁으로, 돈으로, 무력으로, 좁은 이기주의로 풀어보겠다는 탁한 공기가 가득한 그림을 나에게 보여준다. 그 결과는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발광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것들이 사람들을 홀린다.

이때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여 본다. 우리 모두가 희망하고 끊임없이 실천하여 볼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여 본다. 분명히 헌재에서 대통령 탄핵이 인용이 되든 기각이 되든 우리 사회에는 어떤 소용돌이가 휘몰아칠 것이다. 다만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가 문제다. 그러나 어김없이 위대했던 것은 감추어지면 큰일 날 뻔한 것들이 낱낱이 밝혀지면서 거짓의 세계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살아난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생각 없이 일어난 그 거짓들이 그냥 그대로 감추어진 상태로 세월이 지나갔다면 얼마나 끔찍할 뻔 했을까? 그만큼 역사는 진전되고, 민중은 깨어나갔다고 할 수 있다. 대권을 쥐겠다고 불철주야 날뛰는 사람들과 그 주변의 인물들, 그리고 그것들을 뒷받침하여 주는 무리들. 그들은 결코 주인이 아니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들이 알려준다. 그래서 ‘법 따위, 정치 따위는 없어도’ 평화롭게 살아갈 평범하지만 성숙한 씨알(민중)들이 의연하게 버티고 서서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는 모습의 우리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러려면 역시 생각하는 것밖에는 없다. 생각은 사람을 성숙하게 하고 혁명하며, 그런 사람만이 생각하는 사회와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 그런 사회를 꿈꾼다. 그것이 나에게는 새해다. 오늘도 그 생각, 내일도 그 생각이다. 그것이 새날의 생각이다. 속을 태우는 촛불 같은 자기혁명 없는 날은 새해도 새날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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