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연휴가 끝난 지 일주일이 넘어가지만 벧엘의 명절은 아직 완전하게 끝난 것 같지 않다. 사실 벧엘의집 명절은 막상 명절기간보다 명절을 준비하는 기간과 명절이 끝나고 정리하는 기간이 더 바쁘고 복잡하다.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명절기간 진행되는 세끼 무료급식을 준비하고, 인력운용 계획을 짜야 하는 등 명절연휴 동안 차질 없이 해야 할 일들을 진행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제는 1년에 두 번 당연히 치르는 일이어서 그런지 별 무리 없이 잘 준비되고 진행되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명절이 끝나고 나면 공동모금회로부터 지원받은 무료급식비 지원금에 대한 결과보고를 해야 하고, 진행되었던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명절정리에 또 한 차례 정신없이 보낸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또 한 가지 벧엘의집 명절풍경은 명절을 전후로 해서 많은 사람이 다녀간다. 다른 기관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명절을 앞두고 후원금이나 후원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방문하는 고마운 사람들, 특별한 지원물품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 차 방문하는 당사자들, 그리고 한 부류의 사람들로, 그들은 벧엘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다가 명절이 되어 찾아오는 벧엘가족들이다. 이들 중에는 한두 번이 아니라 명절 때만 되면 잊지 않고 꼭 출가한 딸이 친정을 찾아오듯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참 고마운 가족들이다. 사실 울안식구들에게는 평소 강조했던 것 중의 하나가 벧엘은 여러분들의 새로운 고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면서 겪었던 실패와 아픔, 좌절과 분노를 내려놓고 비록 가난하고 가진 것은 부족할지라도 우리만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고, 함께 그 길을 가자고 했었다. 그래서 이번 명절에도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바로 과거의 자리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명절예배 설교문 중의 일부이다.

“… 내가 지금 있는 자리가 바로 내 생각도 있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벧엘 안에 머무십시오. 그리고 벧엘 가족들 안에 서 있으십시오. 그러면 그들이 바로 나의 소중한 가족이 될 것입니다. 그럴 때만이 내가 오늘의 삶을 딛고 내일로 갈 수 있습니다. 과거에 머물러, 지금 있는 자리를 부정해 버리면 나는 늘 우울하고, 억울하고, 쓸쓸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의 시간은 바닥에 엎질러진 물과 같습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입니다. 그러기에 과거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는 사람은 억지를 부리는 사람, 공상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결과는 어떤 결실도 없는,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이겠지요. 반대로 오늘을 사는 사람은 어떨까요? 오늘을 사는 사람은 내일이 있습니다. 꿈이 있습니다. 즐거움이 있습니다.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님 안에 있는 사람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맞습니다. 오늘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비록 시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결단코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사랑하는 벧엘가족 여러분! 오늘의 자리에 서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 머물러 구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삶이되길 축원합니다. 그래서 올 설 명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즐겁고 행복한 명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

그런 벧엘을 추구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부쩍 벧엘을 떠나 자립생활을 하다가 다시 벧엘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씩 벧엘을 떠나 나름대로 자립했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다시 벧엘로 올 수밖에 없는 경우들이다. 이런 현상을 노숙인 복지정책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회전문 현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노숙인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노숙인들을 사회로 복귀시키는 것이기에 노숙상태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노숙상태로 떨어지는 것은 노숙인정책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숙인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인 빈곤문제의 가장 극단의 현상이라면 회전문 현상도 그 시간만큼은 발전한 것은 아닐까?

다시 일어서 보겠다며 출발은 했지만 마음먹은 대로만 살 수 있다면 실패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상황이라는 것이 항상 변수가 많아 마음먹은 대로 안 되었을 뿐, 그래도 처음부터가 아닌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했던 곳을 찾아온다는 것은 그만큼 희망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기에 벧엘은 벧엘가족들에게 친정과 같은 곳이 돼야 할 것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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