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조 ‘얽고 검고 키 큰…’ 외

 

얽고 검고 키 큰 구레나루 그것조차 길고 크다

젊지 않은 놈 밤마다 배에 올라 조고만 구멍에 큰 연장 넣어 두고 흘근할적 할 제는 애정은 커니와 태산이 덮누르르는듯 잔 방귀 소리에 젖먹던 힘이 다 쓰이노매라

아무나 이 놈을 다려다가 백년동주(百年同舟)하고 영영 아니 온들 어느 개딸년이 시앗새옴 하리요

노골적인 성희(性戲) 장면이다. 성기가 커서 고생이라는 것이다. 어느 중년 여인의 입담이 막되어먹은 듯 이리도 걸쭉한가. 대담무쌍, 거칠 것이 없다. 부끄러움도 체면도 내던져 버렸다. 노골적인 성관계는 은유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음담패설은 상스럽고 마구잡이로 익살을 부려야 제맛이 난다.

대부분 장시조 작가들은 중인 출신이나 서민들, 부녀자들이 대부분이다. 많은 작가들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도 도덕이 앞서는 점잖은 시대적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장시조는 서민들의 생활을 반영한 문학으로 인간의 성정을 솔직·진솔·소박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저 건너 괴음채각 중(槐陰彩閣 中)에 수놓은 처녀야
뉘라서 너를 농하여 넘노는지 세미옥안(細尾玉顔)에 운환(雲鬟)은 흐트러져 봉잠(鳳簪)조차 기울었느냐
장부의 탐화지정(探花之情)은 임금불(任不禁)이니 일시화용(一時花容)을 아껴 무슴하리요

저 건너 큰 회나무 그늘 밑에 보이는 저 집 안방에서 수를 놓고 있는 저 처녀야. 누가 너를 희롱하여 놀았는지 곱고 앳된 얼굴에 쪽진 머리가 다 헝클어지고 비녀가 다 기울어졌던 말이냐. 아니다. 탓할 게 무엇인가. 장부가 미인을 탐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거늘,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거늘 청춘 시절 한 때의 얼굴을 아껴서 무엇하겠느냐.

여기에서 처녀와 봉잠은 모순이다. 비녀를 꽂았으면 쪽진 머리요, 쪽진 머리는 처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처녀는 머리를 땋아 늘어뜨린 것이 일반적이다. 가릴 것이 아니라면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 장부의 탐화지정은 마음대로 금할 수가 없으니 한 때의 아리따운 얼굴을 아껴서 무엇하겠느냐? 쪽진 머리가 흐트러지고 비녀가 삐뚫어졌다니 당시의 장면을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에로틱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난만하지도 않다.

콩밭에 들어 콩잎 뜯어 먹는 암소 아무리 이라타 쫓은들 제 어디로 가며
이불 안에 든 님을 발로 툭 차 미적미적하면서 어서 가라한들 날 버리고 제 어디로 가리
아마도 싸우고 못 말릴 손 님이신가 하노라

소는 콩을 좋아한다. 콩잎 뜯어먹고 있는 소를 쫓아낸들 제 어디로 가나 막무가내이다. 이와 진배 없는 것이 이불 안에 든 님이다. 발로 툭 찬다해서 어디 나갈 것이며 어서 나가라한들 날 버리고 갈 것인가. 싸우고도 못 말리는 것이 낭군이라는 것이다.

음양이 있어 세상은 존재한다. 음양의 조합이 바로 남녀 간의 조화이자 사랑이다. 수다와 익살이 있어 되레 밉지가 않다. 익살과 재치로 억압된 서민들의 삶을 솔직, 질박하게 풀어내는 데에 바로 장시조의 미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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