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박사

참 답답해. 도무지 알 수 없어. 어째서 내 눈에는 훤히 보이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건지…. 내 눈에는 분명히 보이는 무도함을 무작스럽게 옹호하는 그들. 또 내게는 반듯하기 이를 데 없는 진실을 그악스럽게 비난하는 그들. 답답하기도 하여라. 우리에게 정의로운 세상은 그들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세상이며, 그들의 꿈이 이뤄지는 나라는 내 꿈이 조각나는 나라다. 우리는 그들을 타자화하고. 그들은 우리를 타자화한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긴 하다. 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그보다는 ‘믿는 걸 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눈은 주어진 정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수동적 렌즈가 아니다. 자신이 믿고 싶은 특정 사실이 눈에 쏙쏙 띄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신념을 지지받음으로써 자존심이 고양되고 쾌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반박증거에 맞닥뜨리면 사람들은 심리적 세계를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불편한 진실을 뭉개버릴 트집거리를 찾는 것이다. 이러한 확증편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꾸준히 작동하면서 사실을 왜곡하는 심리기제 노릇을 한다. 우리는 자신의 신념이나 행동과 대치되는 사실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까다롭게 따지려 든다. 예를 들어, 헤비 드링커는 술의 미학을 과장하는 한편 해악은 숨기면서 논점을 흐린다. “술맛을 모르는 치들은 인생의 참맛을 몰라. 술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은 없어”라고 퉁 치는 식이다. 우리는 현실이 어떠하든 자기 입맛에 맞도록 사실을 재단하고 싶어 한다. 그러한 심리적 정당화를 거쳐 우리는 자신이 믿는 조화로운 세계에 머물 수 있는 것이다.

편향적 사고방식이 뇌의 정보처리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신경과학자로 구성된 드루 웨스턴 팀은 이 두 요인 간의 관계에 관심이 있었다. 연구자들은 피험자가 조시 부시나 존 케리에 대한 정보를 처리할 때 뇌를 MRI로 관찰해 봤다. 그 결과, 자신의 신념에 반한 부조화정보를 볼 때 피험자들의 뇌에서는 추론영역이 거의 정지돼 있었다. 반면, 자기 마음에 맞는 조화정보를 볼 때는 뇌의 정서회로가 활성화됐다. 이 연구는 소박한 실재론이나 확증편향과 같은 심리적 맹점이 우리를 외통수로 몰아갈 수 있는 생리적 기반을 보여준다. 나만은 사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언짢은 것은 간과하면서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보는 사실은 남들도 다 볼 수 있으니 의당 그들이 우리의 의견에 동의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은 무지하거나 무엇인가에 현혹됐기 때문이라고 단정한다. 자신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소박한 실재론자에게는 남들이 편견, 사리사욕, 특정 이념, 종교 따위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참 이상하게도 자신만은 거기서 예외다!). 소박한 실재론은 우리에게 선과 악으로 구분된 세계를 보여준다. 나와 우리가 속한 선한 세계와 그들이 속한 악의 세계 말이다. 악은 항상 우리를 넘어 저 건너편에 그들과 함께 있다. 소박한 실재론이야말로 많은 이들로부터 사회적 화합과 세계평화를 저해하는 근본적 암초로 꼽힐 만큼 위험한 심리적 맹점이다.

반박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마음이 불편해지면 사람들은 사회적 증거에 눈을 돌린다.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 기대어 “남들도 다 나처럼 생각한다고, 안 그런 인간들이 비정상이지. 그렇고말고”라고 되뇌며 안도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실제보다 훨씬 더 많다고 믿고 싶은 허위의 일치성 효과일지도 모른다. 사실을 알고 싶은 욕구는 때때로 자신이 믿는 것을 수호하고 싶은 동기에, 그리고 자신의 신념과 자존심을 수호하고 싶은 욕구에 무릎을 꿇는다. 고단한 밥벌이와 잡다한 일상에 허덕이는 보통 사람 중에서 소위 불편한 진실에 다가갈 여력이 남아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마침내, 모든 것이 끝난 어느 날 사람들은 “내 그럴 줄 알았어”라고 혀를 찰지 모르지만 그것은 후견지명(後見之明) 편향이라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렇게도 자주 소박한 실재론과 확증편향 사이에서 흔들리며 동일한 실수의 시점으로 되돌아가는 반복강박의 상황을 연출하곤 한다. ㅠ ㅠ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