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암 행정학 박사

‘복지재벌’이란 말이 있다. 복지를 이용해 개인적 부를 챙기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교묘히 기생하면서 국민의 혈세인 눈먼 돈을 챙긴다. 그런데도 이들은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고 사업에 특혜를 받으며 사업이 어려워지면 나라와 복지단체에서 돈을 얻어 쓴다. 이들이 운영하는 복지단체는 망하지 않는다. 어려우면 언제든지 국가와 사회적 경제단체에서 지원을 해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땅 짚고 헤엄치며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비리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복지를 전달하는 사람들(전달체계)과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와 유착관계가 이미 커다란 암 덩어리가 돼 손을 댈 수조차 없다. 이들의 비리는 철저히 온상에 가려져 파헤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최근 우리는 최순실 사태를 보고 있지 않은가). 겉으로는 모두가 페스탈로치요, 키다리 아저씨로서 존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사업체와 재산은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대물림돼 대대손손 먹고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복지재벌의 비리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지만 속수무책,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에게는 복지기관에 소속된 사람들이 돈이요, 재산이다.

복지를 대행하는 일선단체에서 행해지는 비리는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기업과 사회단체, 개인들이 가져다 나르는 쌀은 줄 곳을 잃어 수북이 쌓여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쌀과 생필품 등은 복지의 수혜자들에게는 짐이다. 생필품이 들어오는 날, 이들이 모여 사는 인근의 슈퍼는 대목이다. 이들이 되파는 물건들을 헐값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돈이 줄줄 새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복지관에서는 넘쳐나는 돈을 처치하지 못해 복지관에 모여 있는 어르신들에게 보약을 나눠주고 있다고도 한다. 일부 기초생활수급자들의 가정에 가면 고급 TV에 고급 냉장고, 에어컨, 공기청정기 등 부잣집에서나 볼 수 있는 가전제품들이 널려 있다. 복지의 수요보다 쓸데없는 공급이 넘치다 보니 사람들은 교묘한 방법을 동원해 공인된 복지대상이 되려 한다. 소위 눈먼 돈을 챙겨 먹는 복지부자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기업들은 사회공헌이라는 치적을 쌓기 위해 공식 복지기관으로만 지원을 집중시키니 복지재벌들의 재산은 자꾸만 불어난다.

반면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 즉 차상위계층이나 연고 없는 노인들, 소년소녀가장들, 미혼모들에게 있어 쌀 한 가마니, 연탄 한 장, 김치 한 포기는 정말로 감사한 생활필수품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현장 봉사자들은 가급적 국가가 인정한 대상으로의 봉사를 피한다. 이들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수혜가 꼭 필요한 가정과 사람들을 찾아가 맞춤형 봉사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들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고, 비합리적인 법과 제도 때문에 국가적 수혜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복지란 국민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부를 재분배하는 것이다. 진정한 복지는 기한을 정해 복지의 대상이 자활할 수 있도록 돕고, 사지육신 멀쩡한 베짱이를 양산하지 않는다. 복지를 대행하는 사업체에 대한 감시와 감독을 철저히 해 국민의 혈세를 빼돌리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희생과 봉사를 하는 선한 복지가들도 많다. 다만 양의 무리 속에 있는 늑대를 잡아 방출해 내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대로 사악한 복지재벌의 행태를 방조한다면 선량한 시민들까지 영향을 받아 또 다른 복지재벌을 양산한다. 그들의 머릿속에 ‘복지비용’이라는 눈먼 돈은 먼저 챙기는 것이 임자라는 생각이 들어있다. 그들이 복지재벌이 된 이유는 줄줄 새는 복지비용을 챙길 수 있는 비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현장복지의 투명성, 즉 복지의 전달체계 시스템 정착인데 지금처럼 부족한 복지인력(전문성 포함)으로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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