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대 교수

 

장시조 ‘두터비 파리를 물고…’ 외
 

두터비 파리를 물고 두엄 치달아 앉아
건넌산 바라보니 백송골이 떠 있거늘 가슴이 끔찍하여 풀떡 뛰어 내닫다가 두엄 아래 자빠졌다
모처럼 날랜 낼시망정 어혈질 뻔 하쾌라

얼마나 익살스러운가. 파리를 힘없는 백성으로 두꺼비를 어리석은 탐관오리로 풍자한 작자미상의 장시조이다.

두꺼비가 무슨 큰 사냥이나 한 것처럼 겨우 파리 한 마리 잡아 물고 높은 산에라도 오른 듯 의기양양하게 두엄더미 위에 올라 앉아있다. 이게 웬일. 이크. 저 건너 산을 바라보니 하늘에 송골매가 둥 떠있다. 가슴이 뜨끔하여 어떨 결에 피한다는 게 펄떡, 그만 두엄더미 아래로 벌렁 나자빠지고 말았다. 송골매를 보는 것만으로 무서워 어쩔 줄 모르는 어리석은 두꺼비이다. 그런데 몸이 날쌘 나이었기에 그 정도였지 정말 어혈질 뻔했다는 것이다. 명문장이다. 자신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가. 위기에서 재빨리 빠져 나왔다며 스스로를 칭찬하고 있으니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다.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탐관오리의 우쭐대는 꼴을 희화적으로 그린,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세태를 풍자한 작품이다.

개를 여남은이나 기르되 요 개 같이 얄미우랴
미운님 오면은 꼬리를 홰홰 치며 칩뛰락 내리뛰락 반겨서 내닫고 고운님 오면은 뒷발을 바둥바둥 므르락 나으락 캉캉 짖어 돌아가게 한다
쉰밥이 그릇그릇 난들 너 먹일 줄이 이시랴

열 마리 넘게 개를 길렀어도 요 개 같이 얄미운 놈은 처음이라. 내가 미워하는 님이 오면 꼬리를 홰홰 치며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님이 오면 뒷발을 바둥거리며 캥캥 짖어 돌려보낸다. 그리 얄미운 짓만 골라서 하니, 쉰밥이 그릇그릇 남아돈다 해도 네게 먹일 마음이 생기겠느냐.

‘홰홰’, ‘칩뛰락 내리뛰락’, ‘므르락 나으락’ 등 개의 동작이 역동적으로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 시조다.

소경이 맹과니를 두리쳐 업고
굽 떨어진 편격지 맨발에 신고 외나무 썩은 다리로 막대없이 앙감장감 건너가니
그 아래 돌부처 서 있다가 앙천대소(仰天大笑)하더라

소경이 소경을 둘러업고 맨발로 굽이 떨어진 나막신을 신고 외나무 썩은 다리를 막대없이 앙금앙금 건너가니 그 아래 돌부처가 서있다가 하늘을 바라 크게 웃더라. 맹과니는 소경보다 정도가 좀 나은 시력장애자를 말하고, 편격지는 굽없이 납작한 나막신을 말한다. 앙감장감은 위태롭고 굼뜨게 걸어가는 모양을 뜻한다.

병신 육갑한다고 모순투성이의 세상을 빈정대며 조롱하고 있다. 염병할 말이 나올 것 같은,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시조가 나왔을까 싶다. 이를 보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세월이 하 많이 흘렀어도 소재나 방법만이 달라졌을 뿐, 문학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정보의 시조에도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시조가 있다.

소경이 야밤중에 두 눈 먼 말을 타고
대천을 건너다가 빠지거다 저 소경아
아이에 건너지 마던들 빠질 줄 이시랴

과장도 이런 과장이 없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있으니, 오히려 마음이 아픈, 웃음도 나올 수 없는 시조, 세태 풍자는 바로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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