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안이 인용되든, 기각되는 그것은 환호하고 기뻐할 일도 아니고, 땅을 치며 통곡할 일도 아니라고 본다. 이 말은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상관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상관이 있고, 개인이든 집단이든 그 삶에 직접 연결이 돼 있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는 자연인으로 보면 그 자리를 유지하느냐 떠나야 하느냐의 문제이지만, 국민 전체로 보면 역사의 주체로서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중대한 문제를 그래도 안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용되든 기각되든 그에 따른 역사진전의 책임을 국민이 함께 져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촛불집회’에 참여하였고, 마땅히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하루라도 빨리 내려오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 좋다고 생각한다. 무능하거나 도덕권위를 상실한 상태에서는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아는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은 ‘태극기집회’에 열심히 참석하면서 그 결과를 사진으로 알리고 선전하기도 한다. 그 친구들과는 평상시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나눌 수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하여는 극명하게 갈라진다. 그렇다고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그런 행위를 탓할 수도 없고, 미워할 수도 없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내 말이나 행동을 보면 거기에도 꼭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둘 다 나라가 잘 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는 근본에서 차이가 없을 것이다. 다만 방법에서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서로 욕하고 내리깔고 짓뭉개는 듯한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헌재 심판이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말이 험해지고, 행동이 위협스럽게 되고, 분위기가 험악해 진다. 거기에다가 헌법을 잘 지키겠다고 선서하면서 취임한 대통령은 헌법 기관인 검찰과 국회와 헌재를 무시하는 자세로 일관한다. 그러니까 공식자리에서 정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방어할 곳은 회피하고 취재까지도 제한된 공간과 자세에서 그리고 성향이 뚜렷한 개인의 언론매체를 통하여 간담회나 인터뷰라는 방식을 빌어 자신의 자세를 보이고 의견을 내보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을 통하여 국민들 사이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벌어지며 그 상태가 굳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과 특검검사들을 경찰이 나서서 신변보호를 해야 하는 아주 품격이 떨어진 상태가 된 것을 우리는 그냥 단순한 현상으로만 보아야 할까? 개인이든 집단이든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고 당연한 것이지만 그 방법이 곧 폭력성을 보인다는 것은 민주주의사회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런 의미로 보면 우리 사회는 이미 심각하게 갈라진 병든 사회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바란다.

내 개인으로는 헌재에서 탄핵소추안이 인용되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다. 그것을 찬성하고 반대하는 숫자가 어떠하다는 것을 떠나서 그것이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흘러온 역사의 흐름이 그렇게 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지만 만에 하나 기각이 된다고 할지라도 수용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법치를 말하고 공동체를 생각한다면 그렇다. 더욱이나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옳다고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된 결과가 우리 역사에 주는 뜻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여 보아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데서 그렇다. 이때 헌재에서는 가능한 한 국민통합을 위하여 전략판단을 하는 것이 좋다. 즉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일이다.

대통령은 검찰조사도 거부하였고 헌재에서도 마지막 변론에 참여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할 마지막 일이 남아 있다고 본다. 그 자신하나 때문에 갈라진 국민들 사이의 의견과 감정대립을 치유할 의무가 남아 있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커다란 갈등과 파경에 이르고 혼란에 빠지게 한 책임은 바로 그에게 가장 크게 있다. 그래서 헌재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든 아주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것과 국민 모두가 다 함께 한 마음으로 나가기를 바란다는 진정한 말이 있으면 좋겠다. 억울함이나 당당한 보복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성찰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

촛불을 들고 태극기를 들며 의사를 표현하는 시민들. 이제까지 직접 충돌이 없었듯이 앞으로도 충돌 없는 자기표현의 방법을 가지면 좋겠다. 역사가 나가는 것은 마치 바닷가의 밀물과 썰물처럼 들어왔다가 나갔다 하면서 출렁이고 일렁이면서 이루어진다. 당신이 든 촛불이나 태극기는 그 일렁이는 바다 물결을 이루는 한 방울로 역사창출에 참여한 것이 된다. 그러니 서로 질시하거나 적대시하는 말을 삼가자. ‘또라이’ ‘보수꼴통’ ‘종북좌빨’ ‘때려죽일 놈’ ‘염병할 놈’ 따위의 험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자. 아니 그런 맘을 품지도 말자. 그 말하는 얼굴이 아름답지 않고, 그 생각 품는 맘이 평화롭지가 못하다. 썰물과 밀물이 쓸리고 쏠리면서 배를 띄우고 고기를 키우며 수억 년을 되풀이해 온 출렁임을 또 함께 이루어야 할 거대한 물결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어느 한 사람이 이렇고 저렇고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정권은 바뀌고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떠나지만, 나라라는 공동체는 전체 민중의 통합된 정신과 맘이 합하여 영원을 향하여 나간다. 그 찾는 길은 평화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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