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우 한남대학교 홍보팀장/전 한국일보 기자

몸통이 중요하다. 그러나 거기에 빌붙은 자들의 책임을 철저히 묻는 것 역시 가볍지 않은 일이다. 현 정권 국정농단의 조연 중에는 대학교수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띈다. ‘폴리페서’들이다.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등등. 이들 중에 대학에 사표를 내고 공직에 나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한두 해가 아니다. 최고 5년이 넘게 휴직 연장 등의 방법으로 대학 교수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지 않았다면 그 기간은 더 연장되었을 것이다.

대학가의 시선을 싸늘하다. “우리는 더는 당신에게 배울 수 없습니다.” “학교와 우리 학과의 명예가 떨어지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습니다.” 국정 농단 사건이 터진 직후 이들이 소속된 대학마다 해임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대자보가 붙었다. 대학교수들도 시국선언에서 “비선 실세의 무리에 여러 대학의 교수 출신들이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참담함을 토로했다.

사건 관련 교수 중에서 구속기소된 이들도 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난해 대학 강단에 복귀한 이들도 있었다. 이들이 복직한 대학의 학생들은 “국정 농단 사태에 개입한 분이 다시 교수로 돌아와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학교에 이들의 해임을 요구한 학생회도 있었다. 복직한 뒤 한 학기 만에 특검에 구속된 이도 있으니 대학의 꼴이 말이 아니다. 교수들이 무더기로 수갑을 찬 명문여대의 불명예는 쉽게 씻기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사과나 반성을 한 폴리페서가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스스로 사표를 낸 이는 안종범 전 수석뿐이다. 검찰 소환조사 직전에 사표를 낸 그에 대해 일각에서는 사학연금과 퇴직금을 지키기 위해 해임되기 전에 사표를 던진 것이란 해석이 나왔으니 씁쓸할 따름이다.

공무원들은 정당법에 따라 정당 가입이나 정치 활동이 금지되지만, ‘고등교육법에 의한 총장, 학장, 교수, 부교수, 조교수인 교원’은 허용된다. 공직자는 총선이나 대선에 출마하면 90일 전에 공직에서 사퇴해야 하지만, 교수들은 이 규정에서도 예외다.

특정분야 전문가로서 정책 능력을 갖춘 교수들이 현실 정치에 투신하는 것을 욕할 이유는 없다. 다만, 교수직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양다리 탐욕이 문제다. 강사들에게는 암울하고 통탄할 일이다. 교수가 뜻을 품고 정·관계에 진출할 때는 휴직이 아니라 퇴직하는 것이 옳다. 해외의 경우를 보아도 그렇다. 18대 국회를 비롯해 일부 국회의원들이 속칭 ‘폴리페서 규제법안’을 수차례 발의했지만 처리되지 않았다. 폴리페서들의 반대 때문이다.

올해는 대선의 해이다. 또다시 부나비처럼 권력 주변을 기웃거리는 폴리페서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 사이 대학의 교육과 연구의 질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로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기득권을 던지는 용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멸사봉공(滅私奉公)’이 그런 뜻이다. 아, 혹시라도 몸담았던 대학의 연구와 교육이 걱정된다면 안심해도 될 것 같다. 학업에 정진하는 청출어람의 후학들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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