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찾은 고객에 되레 불편 강요

#. 직장인 최슬아(27) 씨는 얼마 전 통장을 발급받기 위해 인근 은행을 찾았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그저 급여계좌 하나 개설하려고 했을 뿐인데 은행 직원으로부터 금융거래목적확인서 제출을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서류를 준비하지 못한 최 씨는 결국 통장 개설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은행 창구에선 높은 문턱을 통과해야 겨우 발급받을 수 있는 통장이 온라인에선 신분증 하나면 ‘속전속결’이다. 은행 고객들은 대면과 비대면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15년 대포통장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창구에서 발급하는 계좌 개설 발급요건을 강화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시행 1년이 지났지만 대포통장 뿌리 뽑자고 애꿎은 사람들만 피해보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와 함께 ‘통장난민(難民)’이란 신조어가 등장한 지 오래다.

지난 24일 대전 지역 시중은행 여러 곳을 찾아 통장 개설을 요청하자 금융거래목적확인서 제출을 요구했다. 일부 은행은 자체 지침에 따라 주민등록상 본인 거주지가 대전인 것이 확인되면 발급을 해주겠다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다수 은행에선 증빙서류 제출이 있어야 개설이 가능했고 그렇지 않으면 한도계좌 발급만 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놨다. 은행을 찾은 차병민(25·서구 갈마동) 씨는 “개인의 금융거래를 은행이 이처럼 까다로운 절차를 통해 불편함만 가중시키는 것이 맞는지 의문스럽다”며 “대포통장 막자고 선량한 시민이 피해를 감수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온라인에선 신분증으로 본인 인증만 되면 바로 계좌 개설이 가능하다. 깐깐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창구 발급 절차와는 대조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일각에선 온라인에 취약한 고객들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렇듯 요즘 많은 고객들이 창구와는 달리 비교적 간단한 비대면 계좌 개설 절차를 이용, 온라인이나 폰뱅킹 등으로 금융 업무를 보는 추세가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은행 본연의 창구업무 축소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진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비대면 채널 등을 강화하면서 창구에서도 고객업무보다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는 추세다”며 “지금은 점포·직원 수를 줄여나가는 수준이지만 나중엔 확대되진 않을까 염려되는 게 사실이다”고 걱정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비대면 계좌 개설하는 사람들에겐 다양한 혜택을 주고 창구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겐 복잡한 절차를 강요하는 차별적 정책은 문제가 있다”며 “단일화된 대면·비대면 계좌 개설 절차를 마련해 근본적으로 동일한 조건에서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고객에 맡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준섭 수습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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