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구간] 청주 상당구 문의면 ... 상실의 아픔 간직한 문의문화재단지

 

문의문화재단지에서 바라본 대청호.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그래서 충청도에 식수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청호와 대청댐은 충청의 젖줄이다. 하지만 대청댐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절대 아름답지 않았다.

누군가는 젖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기다렸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슬픔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차라리 6·25 때 사랑하고 정들었던 고향을 뒤로한 피란민은 그 슬픔을 모든 국민과 나눴겠지만 이들은 그 슬픔을 같이 공유할 사람마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대청댐은 마냥 아름다울 순 없다. 우리가 마시는 충청의 젖은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2월은 가고 3월은 시작됐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문의문화재단지.

#. 수몰민의 역사… 아름답지만 아름답지 않은 문의문화재단지

제법 풀린 날씨 덕에 햇살은 더없이 눈부셨지만 바람만은 아직까지 겨울인 것처럼 매섭다. 그렇게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했던 2월의 마지막은 마치 대청호를 바라보는 마음이었다.

대부분 이들에겐 대청호는 웅장하고 아름다움으로 기억되겠지만 대청호의 수몰지구에 살았던 이들에겐 그리운 고향이자 다신 찾아갈 수 없어 기억하고자 하면서 슬픔에 잠겨 기억하고 싶지 않은 차가움으로 가슴에 각인된다.

 

상실에 잠긴 부재의 아픔 ...

수몰지구 옛 모습 재현한 고요한 마을
지나간 과거의 온기가 악수를 청하고

 

이제까지 대청호의 웅장하고 아름답던 모습만 소개했다면 이번에 다룰 이야기는 그 이면에 가려진 슬픔의 역사다. 충북 청주 문의문화재단지가 바로 대청호의 또 다른 이면을 간직한 곳이다.

문의문화재단지에 주차장에 들어서면 처음부터 비장한 수몰민을 기리기 위한 비가 웅장하게 서 있다. 마치 그 누구도 문의마을 수몰민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할까 두려워 그렇게도 우뚝 서 있나 보다.

 

수몰민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

고향을 희생한 이들을 위한 비를 뒤로하고 언덕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터전을 잃었던 문의마을 주민의 희생의 크기에 비한다면 보잘것없겠지만 도둑은 제 발 저릴 듯한 큰 관문이 하나 나온다.

시간여행에 앞서 작은 설렘이 든다. 하지만 그 설렘은 마냥 긍정적인 것뿐 아니라 슬픔의 진실을 마주할 때의 마음까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대청댐 건설로 수몰돼 지금은 사라진 과거의 문의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충북 유형문화재 49호 문산관.

 

 대청호, 따뜻한 위로 건네고

시간여행하듯 그렇게 동네 한바퀴 일주
말없는 호반은 봄의 언약처럼 희망 일렁

 

초가집에선 김 씨 아저씨가 뜨거운 가마 앞을 묵묵히 지키며 타지로 공부하러 간 자식을 생각하나 보다. 옆집의 이 씨 아저씨는 송아지 때부터 키운 소에게 여물을 챙기고 있지만 대학에 입학한 막내아들을 위해 소를 팔아야 하나 걱정이 한숨이다.

국밥에 소주를 좋아하는 박 씨 아저씨와 최 씨 아저씨가 있는 문의주막에선 주인아저씨가 역시나 손님들과 건하게 술을 마신다. 남편이 언제 집에 오나 걱정하며 된장찌개를 끓이는 정 씨 아줌마의 집에선 오늘도 철수가 혼나는 소리가 들린다.

 

예쁘장해 동네에서 꽤나 인기 있는 영희와 그 뒤에서 코를 훌쩍 먹으며 쫓아다니는 영수는 오늘도 시무룩하다. 동네에서 제일 큰 기와집에 살면서 마당 앞 잘 생긴 소나무가 심어진 오 씨 할아버지 집 근처에 가니 오늘도 고기반찬인가 보다.

양념한 고기를 굽는 냄새에 나도 몰래 담을 타고 고개를 빠끔 내밀자 오 씨 할아버지가 마치 셋째 딸이 낳은 예쁜 손녀를 바라보듯 소나무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온화한 부처 모습의 오 씨 할아버지는 망태기할아버지 같은 표정으로 바뀌더니 큰 소리로 나를 쫓아낸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 가고 저녁을 챙길 어머니에게 가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슬픈 수몰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던 대청호가 시야에 들어온다.

더 이상 소박했던 추억의 문의마을은 없다. 하지만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대청호는 언제나 웅장하고 아름답게, 평온하고 묵묵하게 문의문화재단지 옆을 지키고 있다.

그렇다. 대청호 속 깊이 잠든 문의마을은 이젠 비록 사라졌지만 대청호는 그들을 기억하고 바로 옆에서 문의마을이 아닌 문의문화재단지와 함께했다. 이렇게나 가까이서.

 

대청호 미술관에 전시된 나무 뿌리 형상 작품.

#. 시각, 몰랐지만 그 고마움이여

소박하고 담백했던 문의마을로의 과거 여행을 끝내고 다신 돌아올 수 없단 수몰민의 먹먹함을 공유했다면 기분 전환을 위해서라도 문화재단지 내에 있는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을 방문한다.

미술관은 총 3층으로 규모로 크지 않지만 전시된 작품이 갖고 있는 의미는 상당히 심오하다. ‘우리 모두 나무’란 주제의 작품들은 사실 시각장애인시설인 광화원의 장애인들이 만들었다.

오감 중 한 가지 감각이 사라지면 나머지 네 가지 감각이 크게 발달한다고 하지만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은 그들의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듣기 전엔 도저히 시각장애인이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다.

아니 비장애인의 작품보다 훌륭하다. 작품의 배치도 모두 의미가 있다. 1층엔 시각장애인과 작가들이 함께 새끼줄을 엮어 거대한 뿌리를 표현한 작품이 전시됐다.

 

나무 나이테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

작품 곳곳엔 방울이 달렸는데 시각장애인이 새끼줄을 엮을 때 나는 방울소리를 통해 작품의 형태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완성했단다.

2층에 전시된 작품들은 무지개같이 화려한 형형색색을 보이며 마치 피터 팬이 있을 법한 네버랜드처럼 동화적이다.

 

시선과 울림 ... 너를 이해하다

먹먹함 등지고 미술관으로 옮긴 발걸음
작품 마주하며 '상생'의 가치 재발견

 

나무 열매를 주제로 만들어진 작품.

2층 작품의 주제는 나무 기둥과 나뭇잎, 나무열매인데 1층(뿌리)보다 높은 곳에 배치함으로써 의미를 부여했다. 작품은 시각장애인들이 나뭇잎과 나무열매 등을 만져보고 느낀 감정을 철사 등을 통해 표현했다.

2층의 제2전시실로 가면 본격적인 체험이 시작된다. 바로 암실에서 찰흙으로 특정 형태를 만들어보는 것. 암실에 들어가기 전 모든 집중력을 손끝으로 모아 어느 한 물건을 만진 뒤 그 기억을 바탕으로 암실에서 찰흙으로 똑같이 만들면 된다.

우주의 기운을 모아 주사위를 만지고 암실에 들어가 본다. 마치 태초엔 빛이 없었던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어둠 속에서도 형태가 보이기 시작할까 하는 마음에 집을 나간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가 현관을 응시하는 것처럼 손에 쥐어진 찰흙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보이지 않는다. 발자국 소리에 혹시나 주인이 왔을까 하는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변한 강아지처럼 상실감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모든 집중력을 발휘해 조금 전 느꼈던 주사위의 촉감을 기억해낸다.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진 주사위를 상상하며 거침없이 찰흙을 빚기 시작했다.

분명히 암실 속에서 느낀 촉감이 주사위가 완성됐다고 생각하고 암실을 나와 드디어 빛을 마주했다. 우리에겐 사소한 모든 것들이 감사하게 느껴진 순간이다.

 

잠깐의 순간에도 보이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 느껴졌는데 평생을 어둠 속에 살았던 심 봉사는 눈을 뜬 순간엔 분명히 눈물을 흘렸으리. 보이는 것에 대한 고마움은 빚어진 찰흙을 보고도 느낄 수 있다. 분명 완벽한 모습일 거라 생각한 주사위는 형편없다.

그렇게 시각의 소중함을 느끼며 미술관 옆 대청호를 바라본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랬고 미래에도 존재할 대청호가 당연하다고 느낄 수 없었다.

항상 옆에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대청호에게 느끼는 순간의 감정은 고마움 그 자체였다. 그곳에 가면 항상 있는 대청호가 아닌 특별한 존재임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말이다.

 

총평  ★★★★ 

문의문화재단지는 간단하게 산책하기 좋은 규모다. 천천히 초가집과 기와집을 살피면서 걸으면 두 시간 조금 안 되게 걸린다. 연인과 조용히 산책하며 오순도순 이야기하기엔 최적이다.

관람시간은 동절기인 10월부터 4월까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고 하절기인 5월부터 9월까진 오후 8시까지다. 입장은 관람마감 한 시간 전까지만 가능하고 매주 월요일은 휴무니 꼭 참고하자.

요금은 1인당 1000원이다. 청주시민은 50% 할인된다. 문의문화재단지 입장권을 구매하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도 꼭 들리자.

내달 16일까지 ‘우리 모두 나무’란 주제의 체험전이 진행되며 전시기간 중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까진 관람객 체험 프로그램도 열린다.

 

피카추가 낮은 확률로 나타나는 문의문화재단지.

 

#. 포켓몬 고의 성지 ... 특별한 손님을 만나다

다만 문의문화재단지 내엔 매점이 없기 때문에 식사는 꼭 하고 방문하자. 참고로 문의문화재단지엔 포켓스탑이 10개 이상 있고 피카추가 낮은 확률로 나타난다.

글=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사진=노승환·김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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