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형 청운대학교 교수

드디어 춘삼월, 기쁨과 설렘이 교차하는 때다. 봄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맞이하는 계절이다. 만물에 생기가 돋고 무엇인가 일어날 것 같아서 봄은 꿈과 희망을 상징한다.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농부처럼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 알맞다. 봄이 되면 대학에도 변화가 있다. 대학에 첫발을 내딛는 신입생이 입학하는 것이다. 강의실에서 공부하는 학생을 상상하면 봄날의 싱그러움이 더해진다.

새봄에 큰 꿈을 안고 대학에 들어선 학생들이 할 것은 헤아릴 수 없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은 전공을 뛰어넘는 폭넓은 분야의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서 가능하다. 축구 선수는 공을 다루는 기술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팀을 이길 수 있다는 투지와 정신력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기술과 정신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체력이 없다면 운동장에 나갈 수 없다. 운동선수들이 체력을 기르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는 것처럼 대학인도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쉼 없이 독서를 해야 한다. 체력이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듯 사고력도 갑자기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생이 되었다고 해서 탄탄대로(坦坦大路)가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과 같은 변화가 눈앞에 와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나노기술, 증강현실(AR), 사물인터넷(IoT)과 같은 친숙하지 않은 용어가 흔히 사용되고 초융합화, 초지능화, 초고속화와 같은 기술적 혁신이 예측되고 있다. 미래 변화가 빠르고 폭넓어서 예측이 어렵다고 한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 갖고 있는 인간의 인지 능력이나 정서 능력마저 도전받는 형국이다. 따라서 대학의 교육 목표와 과정은 물론 방법도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혹자는 이를 대학의 위기라고 한다. 과거와 다른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배워야 할 것은 지금까지 쌓아놓은 지식이 최상의 상태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그 지식의 참과 거짓을 밝히려는 정신과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학문하는 정신이고 방법이다. 학문하는 정신은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며 진리에 반하는 그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는 마음이다.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다루는 정신을 배우는 것이다. 수동적 가르침을 받는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까 결정하는 능동적 배움을 좇는 마음이다.

학문하는 방법은 기존에 있는 지식을 배우는 데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는 사고가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능력이다. 알았던 지식일지라도 의문을 갖고 새로운 사고를 전개해야 한다. 따라서 관찰과 실험에서 얻은 증거로 검증한다. 마음에 드는 생각일지라도 잘 설계된 검증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틀린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넓고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기르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문제라도 최적을 방법을 찾는다.

대학에는 반갑지 않은 대학인도 있다. 졸업장이 필요하다거나 취업과 같은 목적에서 대학인으로 만족한다면 달갑지 않다. 그런 학생의 대학생활은 소극적이고 피동적일 수밖에 없다. 학점이나 졸업할 시점의 필요한 것에 매달리게 되어 먼 미래는 내다보지 못한다. 유용성에 우선으로 삼았기 때문에 상상력은 좁아지고 생각의 폭이 갈수록 줄어든다.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게 되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공부에는 관심이 적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은 “눈앞에 있는 것에 얽매이지 말라. 먼 미래를 생각해라. 더 큰 가치를 추구하라. 인류 전체를 생각해라”고 충고한다.

대학인이 되면 사회적 책임 또한 막중하다. 최고의 교육기관에 입학한 그 자체만으로도 큰 혜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비판과 대안을 제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대학에서 지적 호기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배우고 질문하는 것이 즐겁고 새로운 것을 생각하는 것이 신나는 비판적 문화인이 될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쉽게 파악하고 거기에 알맞은 답을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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