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희망진료센터에서 진료봉사를 하고 계시는 충남대학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삼용 교수께서 정년퇴임 축하연을 갖는다며 초청해 참여했었다. 짐작은 했지만 참석자는 대부분 그동안 근무했던 병원과 관련된 의료인들이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호스피스단체와 관련된 사람들, 몇몇 지인들, 그리고 희망진료센터 식구들이었다. 의사로서, 교육자로서 청춘을 바쳐 일했으니 많은 에피소드와 함께 업적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충남대학병원에 혈액종양내과를 만들어낸 장본인이셨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탄생의 주역이기도 하셨다. 또한 시대에 저항하는 의사로서의 표현으로 회식자리에서 만세삼창을 좋아하셨다는 에피스드를 회상하는 분도 있었다. 비록 부담스러운 자리였지만 나름 한 노교수의 청춘을 통째로 보는 것 같아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의사도 아닌 내게 축사를 부탁하신 것이다. 앞서 축사를 하신 분들은 함께 젊은 시절을 보낸 분들이기에 많은 것들을 회상하며 추억할 수 있었겠지만 공통분모가 거의 없는 나에게는 참 난감한 일이었다. 무슨 말로 축하한다고 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름대로 축하의 메시지를 정리해 보았다. 다음은 미리 정리해서 가지고 갔던 축사 원고이다.

“한평생 생명을 살리는 의사로서, 또 사람을 살리는 의사를 키워내는 교육자로서 걸어왔던 1막을 접고, 새로운 2막의 인생길을 열어 가시는 교수님의 2막 출발을 축하드립니다. 2월은 졸업시즌이기도 하지요. 졸업식장에 가보면 교장선생님의 훈시 중에 대동소이하게 나오는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졸업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이지요. 그렇기에 오늘 정년퇴임 축하연도 저는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이 자리도 인생 1막을 정리하고 2막을 출발하는 것을 축하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하신 대다수는 함께 병원에서 동고동락을 했던 동료, 제자들이지요. 그런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의사가 아닌 목사인 제가 아닐까요? 그런 저에게 왜 교수님은 당신의 2막을 출발하는 자리에서 축하의 말을 하라고 했을까 생각해 보았지요. 아마도 무료진료소 희망진료센터에서의 인연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잠시 제가 그동안 진료센터를 통해 만났던 교수님의 모습을 회상해 봅니다.

우리 김교수님은 늘 엄한 분이었습니다. 자원봉사를 하는 의대 학생들에게 진중함으로 봉사에 임하도록 하셨지요. 어쩌면 의술이라는 것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마음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이겠지요. 이렇듯 교수님은 그가 어떤 사람이든 환자를 대할 때는 가장 진중함으로 최선으로 대하셨지요. 그래서 봉사하는 학생들이 작담을 하면 엄히 꾸짖으셨지요. 이렇듯 어쩌면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그랬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이 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또한 교수님은 사람을 보시려고 애쓰셨습니다. 자칫 무료진료소라는 곳이 기능적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는 곳인데 환자 이전에 소중한 인격을 가진 한 사람으로 보시려고 하셨지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질병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려고 애쓰셨습니다. 그렇게 의사로서, 교육자로서 무료진료소에서도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동안 교육자로서, 환자를 살리는 의사로서 한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이제 출발하는 2막의 인생도 그렇게 사실 것이라 믿습니다. 한 사람을 살리는 의사를 넘어 사회를 살리는 의사로의 길로,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것을 넘어 사회를 교육하는 길을 가실 것이라 믿습니다. 분명 교수님의 2막은 사회를 치료하고 가르치는 의사의 길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새롭게 출발하는 두 번째 길을 축하드립니다. 교수님의 앞날에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가 늘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분명한 것은 이제 진료실을 벗어나 지역사회 안에서 질병만이 아닌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의 길을 갈 것이라는 것이다. 교수님도 퇴임 인사에서 당분간 쉼의 시간을 갖고 난 뒤, 분명한 어조로 의료를 단순히 질병만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복지, 지역사회와 연결하여 한 사람의 질병뿐만 아니라 질병으로 생겨난 사회적 문제까지 치료하는 일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질병만을 치료하는 의사가 아닌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의 길이 아닐까? 어쩌면 그동안 교수님께서 의사로서 해보고 싶었던 길이 아닐까?

가수 노사연의“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노랫말처럼 정년퇴임이라는 전환점이 그동안 맺은 열매를 영글게 하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교수님의 앞날에 늘 행복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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