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대 교수

 

장시조 '며느리의 노래'
 

시어마님 며느리가 낫바 벽바흘 구루지마오
빗에 바든 며나린가, 갑세 쳐온 며나린가 밤나모 서근 등걸에 휘초리나 갓치 알살픠선 시아바님, 볏 뵌 쇳동갓치 되죵고신 시어마님, 삼년 겨론 망태에 새 송곳부리갓치 뾰족하신 시누의님, 당피 가론 밧틔 돌피 나니 갓치 새노란 욋곳 갓튼 피똥누난 아달 하나 두고, 건 밧틔 멋곳 갓튼 며나리를 어듸를 낫바하시난고

시어머님, 며느리가 나쁘다고 부엌 바닥을 구르지 마오. 빚 대신 받은 며느리인가, 물건 값으로 데려온 며느리인가. 밤나무 썩은 등걸에 회초리같이 매서우신 시아버님. 볕을 쬔 쇠똥같이 말라빠진 시어머님. 삼 년간 걸려 엮은 망태기에 새 송곳 부리같이 뾰족하신 시누이님. 좋은 곡식 심은 밭에 돌피 난 것같이 샛노란 오이꽃 같은 피똥이나 누는 아들 하나 두고, 기름진 밭에 메꽃 같은 며느리를 어디가 나쁘다고 나무라시오?

작자 미상의 장시조 원부가이다. 며느리가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이, 남편 차례로 푸념하고 있다. 밤나무 썩은 등걸은 늙어빠진 육신으로 시아버지는 그 썩은 등걸이나 회초리 같이 매서운 존재라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볕에 쪼여 말라빠진 쇠똥으로 묘사했다. 말라빠진 쇠똥이라 했으니 그 고약한 심성에다가 부드러운 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시누이는 또 어떤가. 삼년 걸려 만든 망태기이니 그 단단함이 인정머리라곤 하나도 없고 불쑥 삐져나온 날카로운 새송곳부리라 했으니 심뽀가 이만 저만 고약한 것이 아니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또 어떤가? 좋은 곡식 심은 밭에 잡초가 난 것처럼 샛노란 오이꽃 같고 더군다나 피똥 누는 아들이라 했으니 비실비실해 어디 사내구실이나 제대로 했겠는가. 그러나 며느리 자기 자신은 기름진 밭에 메꽃같이 탐스럽다는 것이다.

자신에 비해 별 볼 일 없는 시집 식구들인데도 자신이 며느리라는 죄 아닌 죄 때문에 이들로부터 학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고된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일상생활의 소재를 통해 희화화시켜 해학적이면서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단순히 시집 식구들에 대한 항변만이 아닌, 사회적 제도나 인습에 대한 비판이나 풍자, 어쩌면 최소한 인간이기를 바라는 선언적 의미는 아니었을까.

새약시 쉬집간 날 밤의 질방그리 대엿슬 따려 바리오니 싀어미 이르기를 물나달나 하난괴야 새약시 대답하되 싀어미 아달놈이 우리집 전라도 경상도로셔 회령종성다히를 못 쓰게 뚜러 어긔로쳐 시니 글노 비겨보와 냥의 쟝할가 하노라

새색시 시집가던 날 밤 질그릇 대여섯을 깨었는데 시어미가 값을 물어달라고 한다. 새색시 대답하되 시어미 아들 놈이 우리집 경상도 전라도로부터 회령종성 땅 어름을 뚫어 못쓰게 만들었으니 그것으로 비교해보아도 피장파장이 아닌가.

새색시가 시집가던 날 밤 질그릇 대여섯을 깨었다고 시어머니가 물어달라고 한다. 이에 새색시는 시어머니 아들놈이 우리 집 경상도 전라도로부터 회령종성 땅 어름을 뚫어 못 쓰게 만들었으니 그것으로 비겨보아도 피장파장이 아닌가 하고 항변하고 있다. ‘경상도 전라도’는 여체의 유방 부분을 ‘회령종성 다히’는 여체의 음부를 은유하고 있다. 시어머니 당신의 아들은 나의 육체를 이미 결딴냈으니 하찮은 그릇 몇 개쯤 깨졌다 해서 그게 무슨 대수냐는 것이다. 시집 식구들의 고약한 처사에 며느리가 이유 있는 항변을 하고 있다.

얼마나 며느리들이 한이 되었으면 이런 해학과 풍자를 통해서라도 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어했을까. 격세지감, 오늘날에는 시어미가 며느리의 눈치를 보는 세상이 됐다. 참으로 달라져도 많이도 달라졌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