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자선교회이사장

내 생각엔 봄은 시를 닮고 가을은 수필을 닮은 것 같다. 봄은 여자 같고 가을은 남자 같다. 봄은 살짝 왔다 가는 처녀 같고 가을은 천천히 오는 부인 같다. 봄을 맞으면서 시인들의 시심(詩心)을 나누어보자.

①“중, 중, 때때 중, 우리 애기 까까머리/삼월 삼짇날, 질나라비 훨훨/쑥 뜯어다가 개피떡 만들어/호, 호 잠들여 놓고, 냠, 냠 잘도 먹었다/중, 중, 때때 중, 우리 애기 상제로 사갑소”(정지용/삼월 삼짇날)

②“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결에는, 싱그러운 미나리 냄새가 풍긴다/해외로 나간 친구의 체온이 느껴진다/참으로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골목길에는, 손만 대면 모든 사업이, 다 이루어질 것만 같다/동, 서, 남, 북으로 틔어 있는 골목마다/수국색 공기가 술렁거리고 뜻하지 않게 반가운 친구를, 다음 골목에서 만날 것만 같다/나도 모르게 약간 걸음걸이가 빨라지는 어제, 오늘/어디서나 분홍빛 발을 아장거리며/내 앞을 걸어가는 비둘기를 만나게 된다/-무슨 일을 하고 싶다/-엄청나고도 착한 일을 하고 싶다/-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 속에는 끊임없이 종소리가 울려오고 나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난다”(박목월/3월로 건너가는 길목에서)

③“산서 고등학교 관사 앞에 매화꽃 핀 다음에는/산서 주조장 돌담에 기대어 산수유 꽃 피고/산서 중학교 뒷산에 조팝나무 꽃 핀 다음에는/산서 우체국 뒤뜰에서는 목련꽃 피고/산서 초등학교 울타리 너머 개나리 꽃 핀 다음에는/산서 정류소 가는 길가에 자주 제비꽃 피고”(안도현/3월과 4월 사이)

④“초록빛 새싹으로 덮인 기슭에/벌써 제비꽃 푸름이 울려퍼졌다/오직 검은 숲을 따라서만/아직 눈이 삐죽삐죽 혀처럼 놓여있다//그러나 방울방울 녹아내리고 있다. 목마른 대지에 흡인되어/그리고 저 위 창백한 하늘가에는/양떼구름이 빛 반짝이는 떼를 이뤄 흘러가고 있다/ 사랑에 빠진 피리새 울음은 나무덤불 속에서 녹는다/사람들아, 너희도 노래하고 서로 사랑하라!”(헤세/3월)

⑤“얼음을 깨고 나아가는 쇄빙선 같이/치욕보다 더 생생한 슬픔이 내게로 온다/슬픔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모자가 얹혀지지 않은 머리처럼, 그것은 인생이 천진스럽지 못하다는 징표/영양분 가득한 저 3월 햇빛에서는 왜 비릿한 젖 냄새가 나는가/산수유나무는 햇빛을 정신없이 빨아들이고/검은 가지마다 온통 애기 젖꼭지만 한 노란 꽃눈을 틔운다//3월의 햇빛 속에서/누군가 뼈만 앙상한 제 다리의 깊어진, 궤양을 바라보며/살아봐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3월에 슬퍼할 겨를조차 없는 이들은/부끄러워하자, 그 부끄러움을 뭉쳐 제 슬픔 하나라도 집어낼 일이다”(장석주/3월)

⑥“어차피 어차피 3월은 오는구나/오고야 마는구나/2월을 이기고, 추위와 가난한 마음을 이기고, 넓은 마음이 돌아오는구나/돌아와 우리 앞에 풀잎과 꽃잎의 비단방석을 까는구나/새들은 우리더러 무슨 소리든 내보라 내보라고 조르는구나/시냇물 소리도 우리더러 지껄이라 그러는구나/아, 젊은 아이들은/다시 한 번 새 옷을 갈아입고/새 가방을 들고, 새 배지를 달고/우리 앞을 물결쳐 스쳐가겠지/그러나 3월에도/외로운 사람은 여전히 외롭고, 쓸쓸한 사람은 쓸쓸하겠지”(나태주/3월)

⑦“3월은 바람쟁이/가끔 겨울과 어울려, 대폿집에 들어가/거나해서는 아가씨들 창을 두드리고/할아버지랑 문풍지를 뜯고, 나들이 털옷을 벗긴다//애들을 깨워서는, 막힌 골목을 뚫고/봄을 마당에서 키운다//수양버들 허우적이며 실가지가 하늘거린다/대지는 회상, 씨앗을 안고 부풀며/겨울에 꾸부러진 나무허리를 펴주고/새들의 방울소리 고목에서 흩어지니/여우도 굴속에서 나온다//3월 바람, 4월 비, 5월 꽃/이렇게 콤비가 되면/겨울 왕조를 무너뜨려/여긴가 저긴가 그리운 것을 찾아/헤매는 이방인”(김광섭/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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