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거리 위 4남매’ 발견, 그 후 1년의 기록

지역사회에 사회안전망에서 이탈돼 장기간 거리를 떠돈 4남매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4남매는 타지에서 지역사회로 전입, 거리로 내몰렸지만 사회는 오랜 기간 이들 남매의 보호에 있어 사실상 방임 상태였다는 문제지점이 엿보인다. 이들이 겪은 곤궁한 삶은 최대 수십만으로 추정되는 우리 사회 ‘거리의 아이들’이 마주하는 단면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깊다. 본보는 지난해 3월 대전 중부경찰서의 거리상담에서 발견된 4남매가 ‘거리의 아이들’로 전락하게 된 과정, 발견 후 보호까지 1년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편집자 

①‘거리 위 4남매’… 기구한 삶에 떠밀려온 4남매, 거리에서 표류하다<3월 20일자 기사보기>
②“나쁜 일 하는 것 같아 걱정돼요”, 4남매가 지역사회에 전한 SOS<3월 21일자 기사보기>
③‘거리 위 4남매’ 발견, 그 후 1년의 기록 
④사회가 손 놓은 거리의 아이들, 발견·보호 시스템 필요하다 

 

기구한 사연으로 사회안전망에서 이탈된 세아, 민수, 희영, 아라(이하 가명) 4남매. 어두운 거리를 떠돌았던 이들이 지난해 10월 불안전하나마 다시 제도권 틀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한줄기 빛처럼 스며든 학교와 경찰의 관심 덕분이었다.

이들이 다녔던 중학교와 관할 경찰의 노력은 각별했다. 대전의 A 중학교는 전학 온 지 며칠 만에 사라진 희영이와 아라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 학교 교사 B 씨는 “당시 교장 선생님이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따뜻하게 감싸 잘 되게 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계셨다”며 “(희영이와 아라를) 졸업시키기 위해 학교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A 중학교 교사들에게 있어 희영이와 아라는 그저 귀찮고 성가신 존재가 아니었다. 이들이 거리를 헤맬 때면, 주변에 물어 학교로 데려오곤 했다. 관할 경찰도 힘을 보탰다. 대전 중부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SPO)은 수개월 간 4남매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수소문했다. 숱한 발품 끝에 한 가출패밀리에서 민수를 찾아냈고 B 교사로부터 ‘장기결석 학생을 찾아달라’는 요청을 받아 한 모텔에서 희영이를 찾아냈다. 또 희영이를 통해 다른 모텔에 있던 아라와 서울에 기거하고 있던 세아와도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학교와 경찰의 고민은 깊어졌다. 4남매를 단기쉼터로 보낸다면 쳇바퀴 돌 듯 다시 거리로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과거에도 이들은 적응하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지 않았던가. 고민 끝에 B 교사와 관할 경찰은 십시일반 돈을 모으고 국민기초수급대상자 신청을 해 4남매에게 작은 방을 얻어줬다. 이는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4남매가 다시 모일 수 있었던 바탕이 됐다.

희영이는 경찰에게 “이제 학교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등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그러나 무단결석이 계속 이어졌던 탓에 유급위기에 몰렸다. 게다가 막내 아라는 학교에 가고 싶은 생각이 적었고 남은 법적출석일수도 하루에 불과했다. 희영이와 아라가 졸업을 하기란 좀체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당시 ‘정유라 학사비리’사건이 터져 학적관리도 더욱 강화된 상태였다.

그러나 B 교사와 관할 경찰은 포기하지 않았다. 희영이와 아라를 졸업시키기 위해 매일 아침 4남매의 원룸을 찾아가 이들을 학교로 데려오고 데려다주는 노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혹 이들이 학교에 오기 힘든 날이 있으면 대체수업으로 대신했다. 학교 친구들도 성심껏 도왔다. 희영이와 아라의 친구는 비록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아침 일찍 원룸으로 향해 친구를 깨워 학교로 등교하는 등 ‘의리’를 발휘했다.

지난해 10월의 어느 하루, 4남매는 경찰을 찾아왔다. “엄마 기일에 엄마가 계신 곳에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남매에게 엄마는 여전히 따뜻하고 그리운 품, 경찰의 도움을 받은 이들은 대전에서 엄마가 모셔진 강원도에 다녀올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의 노력 속에 4남매는 조금씩 변화했다. 둘째 민수와 첫째 세아는 비록 학교를 다니진 않았지만 예전의 무기력을 딛고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

4남매는 새해 들어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이들에게 도움을 준 경찰은 “올해 1월경 아이들의 얼굴이 이전보다 한층 밝아졌다. 4남매가 흩어져 있다가 함께 생활한 덕분”이라며 “특히 맏이랑 함께 사는 것에 대해 동생들이 행복해했다. 일반 가족의 끈끈함은 똑같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2월, 마침내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희영이와 아라가 중학교 졸업장을 받게 된 것이다. 졸업식장에는 언니 세아와 오빠 민수는 물론 친구들도 함께 축하를 해줬다. 졸업식장에서 교장선생님은 단상에 오른 학생들을 차례로 안아줬다. 그러나 아라는 쭈뼛하고 올라서기를 망설였다. B 교사는 그런 아라를 보며 “졸업장은 아무나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노력했기에 너도 당당하게 가질 수 있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제야 아라가 위로 올라 졸업장을 받았다. 졸업장을 받은 아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날 졸업식장에서 담당 경찰은 환하게 웃고 있는 4남매의 모습을 봤다. 희영이와 아라는 꽃을 들고 찾아온 담당경찰을 보며 지나가는 말로 “고마워요”라고 했다. 구구절절한 감사나, 어떤 감동의 언어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짧은 하나의 말은, 4남매의 인생이 바뀐 것을 상징하는 값진 언어였다. 사회의 방임에 울었던 4남매, 그러나 남매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이 있었기에 이들은 비로소 미래가 있는 ‘꽃’같은 존재가 됐다.

곽진성 기자 pen@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