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세월호 시험인양이 3월 22일 시작돼 24일에는 성공 가능성이 확연해 보이던 때 내 수첩에는 이런 메모를 남겼다. “세월호와 박근혜. 모두가 다 그랬겠다/ 그녀가 가라앉으니/ 이 배가 솟아오른다고/ 그렇게 크고 무거웠나/ 봄바람에 날리는 낡은 뱀허물 같은/ 권력에 짓눌려/ 숨통 막혀 죽은 영혼들/ 그녀가 가라앉으니/ 세월호 떠올랐다/ 온갖 의문 한 몸에 품고// 감추어질까/ 밝혀질까// 양심에 빛이 밝혀진다면/ 그래서 선언할 입이 열린다면/ 그 배에 짐 싣던 일꾼들/ 들어가 일했던 사람들/ 조각양심으로 소리를 낸다면/ 진실은 밝혀지겠지//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정권/ 세월호와 함께 푸르게 세워질 사회/ 진실은 밝혀진다고.”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참으로 놀라운 의미심장한 말들이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진실은 밝혀진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촛불은 멈추지 않는다.’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온갖 의혹을 한 몸에 담고 있고, 온갖 진실을 감추려고 몸부림친 사람도, 그 진실을 밝히자고 엄동설한에 고생한 사람도 한결같이 ‘진실은 밝혀지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진실의 실체는 같지 않을 것이다. 밝혀질 진실이라는 내용 자체도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밝혀질 진실은 밝은 해 아래 드러나기를 기다릴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진실을 밝히고 싶은 사람도, 진실을 감추고 싶은 사람도 한결같이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말한다. 거짓으로라도 일단 그렇게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진리 앞에 겸손해 질 수밖에 없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람은 진리를 토설하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16일 아침 진도 앞 가까운 바다에서, 많은 시민이 생중계되는 세월호의 침몰광경을 보면서 안타까워 발을 동동거렸다. 한탄이 끝이 없었다. 그러나 종내 깊은 물속으로 배가 가라앉고, 304명의 희생자가 나타났을 때, 대한민국정부라는 배가 침몰했다고 했다. 당시 세월호의 침몰은 대한민국호의 침몰을 상징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대한민국은 침몰할 수 없다. 다만 정권과 정부의 침몰, 그 시스템의 침몰은 가능하였다. 사실 그때부터, 그러니까 세월호에 대한 진정성 있는 대응을 하지 못하는 박근혜 정권은 그때부터 도덕성이 상실되고 국민 앞에 권위가 상실되는 모습이 역력하여졌다. 그런 뒤 3년 가까이에서 세월호는 나타났고, 그 정권은 침몰하였다.

거기에는 몇 가지 양심들이 밝혀져서 된 것이라고 본다. ‘내 아이가 돌아오지 않고는 사람으로 살 수 없다’는 미수습자 부모들의 한결같은 아픈 마음, 그것에 함께하는 참으로 많은 시민들. 텐트를 치고, 촛불을 밝히고, 거리를 행진하고, 알게 모르게 기도하고, 또 다시 사고현장이 보이는 팽목항을 찾고, 안산을 찾고, 학생들이 다녔던 학교를 찾고, 노란 나비리본을 옷에 달고 머리에 꽂고 가방에 달고 다니는 마음들. 이렇게 하여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맘들이 꺼질 듯 꺼지지 않고 계속하여 불이 붙었다. 그러니까 세월호가 떠올라 미수습자들이 다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우리 사회가 사람으로 사는 사회가 될 수 없다는 절박한 맘, 그 맘으로 살 수밖에 없는 사그러들지 않는 양심들이 있어서, 그 힘으로 세월호가 인양됐다. 기술이 문제가 아니요, 장비가 문제가 아니며, 동원된 인원이 문제가 아니며, 얼마가 들어가는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디인지는 모르는, 진실을 감추려는 은밀한 세력과 끊임없이 싸워서 봄풀처럼 솟아나는 진실의 생명력이 합하여 세월호를 인양하였다. 하려고만 하면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을 온갖 이해되지도 않는 이유를 대면서 바다 속에 영원히 감추어두려 하였던 검은 세력들. 이제는 그 세력이 다시 밝은 해 아래 나타나야 할 차례다. 그래서 ‘진실은 침묵하지 않고 밝혀진다’는 진리를 우리 사회 전체가 체험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배가 곧 뭍으로 옮겨져서 차근히 수색하고 검색해야 할 차례에 와 있는 지금, 모든 관계부서는 아무런 꼼수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진실을 밝히려는 맘과 자세로 그 일을 해야 할 차례다. 누구의 말대로, ‘삼실’ 즉 ‘진실한 맘, 성실한 태도, 절실한 심정’으로 세월호에 묻힌 진실을 밝히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침몰한 배 하나를 인양하고 수색하는 것은 단순한 침몰사건해결을 위한 작은 일이 아니다. ‘침몰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씻어내기 위한 작업이다. 그러니까 침몰한 세월호가 품고 있는 비밀, 의혹을 밝히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온갖 쌓인 것들을 푸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국가라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국가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중간과정이다. 그래서 국가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그 진화의 방향은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사회체계, 생명이 생명으로 살 수 있는 생명체계를 만들어가는 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을 위하여 정부 시스템, 법체계. 행정과정, 우리 일상의 관습들을 찬찬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어중이떠중이들이 나서는 선거판의 열기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근원을 찬찬히 살펴야 한다. 지금 막 진행 중인 대통령선거과정에서 세월호 침몰로 나타나는 우리 사회의 쌓이고 쌓인 폐습들의 모습을 살펴야 한다. 저만큼 앞서 가는 시민들의 의식을 따르지 못하는 소위 낡은 정치가들의 거짓된 모습을 추려내야 한다. 그것이 세월호가 이 시점에 건져진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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