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현 대전시의원

 

대전시교육청이 2019년 3월 개교를 목표로 옛 유성중학교 부지에 국제중·고(663명 규모) 설립을 재추진해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2015년 7월 필자는 시의회 시정질문에서 대전고의 국제고 전환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며 중단을 촉구했다. 당시 설동호 교육감은 대전의 학생수가 지속적으로 줄어 신설보다 기존 일반고를 국제고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논리를 폈고, 대전고의 국제고 전환은 시의회 동의를 받지 못해 무산됐다. 그런데 시교육청이 국제중·고를 신설하겠단다. 이번엔 인재가 유출되고, 대덕특구에 외국인·귀국자가 많아 수요가 많다는 논리다.

시교육청의 국제중·고 설립 추진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과학벨트 정주여건 조성을 위해 신동·둔곡지구에 설립하겠다하더니 옛 유성중 부지로 옮겨 추진하다가, 2014년도엔 추가로 확보하려던 유성생명과학고 실습지 부지가 그린벨트에서 해제되지 않아 설립 불가 통보를 받고도 예산을 올려 231억 원을 배정받아 시의회를 기만했고, 2015년 1월엔 갑자기 대전고를 국제고로 전환한다며 1년간 행정력을 낭비했다. 이제 4수를 한다며 다시 옛 유성중 부지에 이웃한 유성생명과학고 실습지를 그린벨트 해제하지 않고 운동장으로 공동활용해 편법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설 교육감 임기 내내 국제중·고 설립으로 갈등이 이어질 태세다.

대전에 국제중·고 설립은 불필요하다. 그 이유는 첫째, 출산이 지속적으로 줄면서 학생수도 감소해 기존 학교도 타격이 불가피한데 국제중·고 설립은 대전교육 여건을 더 어렵게 할 것이다. 시교육청은 학생수 감소로 기성초 길헌분교 통폐합을 추진하려다 주민 반대에 부딪혔고, 시의회 동의를 받지 못해 무산됐다. 한쪽에선 학생수 감소로 통폐합을 추진하면서 한쪽에선 학교를 신설하겠다니 일관성이 없는 행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전은 지난 10년간 주민등록 인구가 2.2% 증가에 그쳤다. 전국 평균(4.4%)의 절반에 불과했고, 그나마 2014년부터 3년간은 1만 8000명 넘게 감소했다.

둘째, 인재 유출, 수요가 여전하다는 논리는 특목고·자사고 신설 때마다 들고 나오는 레퍼토리이지만 대전의 특목고 입학 경쟁률은 갈수록 낮아져 수요가 줄고 있다. 국제중·고 설립 이후에도 수요는 일정부분 있을 것이고, 전국 특목고로의 인재 유출은 여전할 것인데 그때마다 특목고를 신설할 텐가? 매년 100여 명에 불과한 ‘인재 유출’보다 더 심각한 건 ‘인구 유출’이다. 대전의 전반적인 학교교육 혁신으로 세종시로의 인구 이동을 최소화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셋째, 대전지역 학생들의 사교육비 증가가 우려된다. 국제중·고는 초등학교부터 영어 사교육비를 가중시키고, 사교육비가 전국 1·2위권인 대전의 사교육시장만 커질 것이다.

넷째, 교육예산을 악화시킬 것이다. 국제중·고 신설에 소요되는 예산은 건축비 465억 원에 운영비가 매년 1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예산은 교육부에서 별도 지원해주는 것이 아닌 기존 학교에 투입될 시교육청 자체 예산을 절감해 충당할 수밖에 없다. 시교육청 부채만 3000억 원에 달하는 데다 냉난방비 부족 등 가뜩이나 어려운 학교 재정 여건을 더 어렵게 할 뿐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있는가? 첫째, 학생수가 지속 감소하는 실정에 기존 학교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 외국인을 위한다면 대전외고 등 기존 학교에 외국인 학급을 추가하면 된다. 대전외고는 학생 정원을 150명이나 줄였기 때문에 수용 여력이 충분하다. 또 외국인은 어차피 입시경쟁 중심의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잘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5년 전 KAIST가 외국인을 위한 학교 설립을 추진했다가 수요 부족으로 중단한 바 있다. 연구단지를 통틀어도 수요가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관평동에 있는 외국인학교에 보내고 학비 지원하는 게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매년 38명(중 18명, 고 20명) 정도의 외국인 학생을 입학시키기 위한다면 기존 학교에 특별학급을 신설해도 된다. 군 교육기관이 밀집한 자운대 내 자운초등학교에는 20명 이상의 외국 장교 자녀들이 교육받고 있고, 대덕중학교에선 귀국한 연구원 자녀 특별학급을 운영한 경험도 많고, 대전외고도 국제적 인재를 기르기 위해 설립했으므로 기능을 보강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귀국자·외국인 자녀 학생수는 2016년 4월 기준 693명으로 이 가운데 67.2%가 초등학생이다. 그럼 국제초등학교도 설립할 텐가?

둘째, 인근 세종국제고를 활용하면 된다. 세종국제고에 진학하는 인재를 유출로 볼 필요가 없다. 인구가 줄어드는 대전으로선 성장해 가는 세종시와 상생 발전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미 대전발전연구원을 ‘대전세종연구원’으로 변경해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지 않은가? 대전·세종 인구를 합쳐도 200만 명이 안 된다. 세종국제고 따로, 대전국제고 따로 설립할 필요가 없다. 또 신동·둔곡지구 과학벨트 단지에서 옛 유성중학교까지의 거리나 세종국제고까지의 거리나 비슷하다. 국제중학교는 기숙사가 없으므로 집에서 통학해야 하는데 중학생이 17~18㎞나 되는 거리를 매일 통학하는 게 가능한가?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대전에 국제중·고 설립은 불필요하다. 시교육청은 지금이라도 소모적이고 예산낭비적인 국제학교 설립 추진을 중단하고, 대전교육 전반에 혁신을 일으켜 세종시로의 인구 유출 최소화에 집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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