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형 청운대학교 교수

인간은 지혜로운 존재다. 그것은 스스로 질문을 해왔기에 가능해졌다.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그 순간 답을 찾기 위해 고민에 빠지게 된다. 생각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성찰과 변화의 기회를 갖는다. 질문은 새로운 세계를 여는 안내자이며 자신을 찾는 시발점으로 비유된다.

소크라테스는 질문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질문을 통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지적 산파역(産婆役)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질문을 받은 자에게 정신적 산고를 겪게 함으로써 전에 머물렀던 곳을 넘어 새로운 곳에 이르도록 한다. 그 과정에서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된다. 그것은 정해진 답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해답을 찾아 나서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질문은 자연과 세계를 돌아보게 하고 인간을 성장시키는 구실을 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질문할 수 있다면 답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제대로 된 질문은 질문 속에 답이 있다는 뜻이다. 또한 적절하지 못한 질문으로 가득 찬 ‘질문의 숲’을 통과하도록 질문의 씨를 뿌려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가꾸면 풍성한 질문의 열매를 거둘 수 있다고 한다. 유대인도 질문의 중요성을 알았기에 5000년 유대 교육의 비밀이 ‘질문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인공지능(AI)은 주어진 문제에 해답을 잘 찾을 수 있을지 몰라도 질문하는 능력은 없다. 해답은 제한적이지만 질문은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바로 질문하는 능력 덕분이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좋은 질문을 만나기 힘들어졌다. 질문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닐 테지만, 아예 질문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보인다.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치부(置簿)해 버리거나 해당 문제에 관심이 적어진 탓이다. 골치 아픈 문제에 회피하려는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자연의 논리는 약해지고 비판의식은 사라진다. 스르르 파멸의 길로 간다.

봄이 와도 어떤 작물을 심을지, 언제 씨를 뿌릴지 농부들은 예전처럼 질문하지 않는다. 다음 농사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어떻게 씨앗을 거두어야 할지 걱정하지 않는다. 대신에 시장에서 값이 좋고 잘 팔리는 작물을 심는다. 씨앗은 종자회사에서 구매하면 된다고 말한다. 또 필요한 것은 무엇이던지 시장에서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닐하우스 때문에 기후 구애도 받지 않게 되면서 농부는 땅에 대한 탐구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땅심에 대한 걱정도 접어 둔지 오래다. 농부가 지혜롭지 않고 땀 흘리는 노동자로 전락했다면, 그것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점차 쉬운 질문에 익숙해지고 있다. 시장에서 원하는 질문을 추종하는 점도 역력하다. 생명력이 없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런 질문은 아무리 많이 해도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다. 지적 허기심(虛飢心)을 채울 수 없는 것이다. 음식을 먹어도 탈이 나서 설사로 영양분이 빠져나가듯 질문하는 기력은 갈수록 약해질 뿐이다. 피와 살이 되지 못하는 질문은 그 역할이 끝난 것이다.

자신의 의미를 찾고 세상 변화에 지혜롭게 대처하려면 질문을 해야 한다. 어떤 질문이라도 좋다. 의미 없는 질문이란 없다. 질문은 곧 호기심과 창조성의 발로(發露)이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질문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답을 구하려는데 진땀나는 질문, 정신이 번쩍 드는 질문, 미래로 문을 열어주는 질문, 예전에 몰랐던 가치를 생각하는 질문,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인 질문, 기존에 가졌던 가치관과 인생관을 사정없이 무너뜨리는 질문이 좋은 질문이다.

답을 구하려면 구할수록 갈증이 심해지는 질문, 하나의 질문이 더 많은 질문을 낳게 하는 질문이 있어야 한다. 또 ‘무슨 일을 할 것인가’와 같은 일 중심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와 같은 과정 중심의 질문을 해야 한다. ‘무엇이 되고 싶은가’와 같이 결과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그것이 무엇인가’와 같은 존재에 초점을 둔 질문을 해야 한다. 위대한 질문은 쉽게 대답할 수 없다. 그 때문에 그런 해답을 구하는 자는 사고력을 길러 지혜롭게 된다. 새로운 세상을 열게 하는 열쇠를 갖는 것이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