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동일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한국주민자치중앙회장)

미국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했던 연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여러 일화를 남긴 바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의 연설은 경쟁자인 힐러리를 이기는 가장 큰 무기였다. 트럼프 연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직설적인 화법으로 꾸밈이 없다는 점이다. 품위 있고 격조 높은 스토리 텔링(Story telling)에 익숙한 미국민들에겐 막말로 비춰졌지만,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의 점잖은 연설에 유권자들은 지쳐 있었다. 더욱이 미국민들이 겪고 있는 냉엄한 경제적 현실과 불평등의 문제들은 우아하고 이상적인 연설의 내용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미국 보수층의 문제의식에 관한 트럼프의 거친 연설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연설 내용(스토리)은 무질서하고, 연설 방법(텔링)은 까칠했지만, 그 속에 진정성과 열정이 있다고 점수를 준 것이다. 결국 그는 선거 타깃팅을 분명히 하고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겠다는 자기만의 신념을 유권자들에게 강력히 전달했다. 결국, 의사소통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그의 전략은 성공했다.

우리의 유력 대선주자들의 의사소통능력은 어떤지 비교해 보자. 우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의사소통능력은 전에 비해 일취월장했다는 평가다. 그의 텔링은 간결해지고 설득력이 향상됐다고 한다. 그러나 스토리는 풍부하지만 여전히 취약하다고 얘기한다. 물론 수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어 그에게 전달하고 있다 해도 아직 자기 철학과 소신으로 완전히 소화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텔링은 매우 뛰어나다. 그의 대중연설은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러나 스토리가 탄탄하지 못하고, 애매모호하다고 평가한다. 물론 대연정과 보수의 지지를 염두에 둔 발언 때문이라 이해는 가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주장 속에 다소의 모순과 균열이 드러나고 있다.

반면,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과 이재명 성남시장의 의사소통에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텔링면에서 신선하다. 안 의원이 정치권에 등장한 사실과 그의 주장은 사이다만큼 시원하고 청량했다. 최근 혼란한 시국에 이 시장의 발언 역시 시원하고 명쾌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그들의 스토리가 더욱 진화하지 못하고 늘 거기서 맴돌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안 의원은 과학과 기술에, 이 시장은 탄핵시국에 주로 집중돼 그 신선감과 기대감이 확장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새 스토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스토리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텔링이 유권자들에게 잘 체감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준표 경남지사의 의사소통은 늘 거침이 없다. 경쟁 상대의 약점을 찾아 선제공격함으로써 의사소통을 자기중심으로 만드는 뛰어난 능력도 있다. 마치 트럼프를 보는 듯하다. 이번 선거에 그러한 스토리 텔링이 유권자들의 점수를 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완벽한 의사소통능력을 구비한 지도자는 이 세상에 없다. 설령 그 능력이 완벽하게 구비돼 있다 해도 그 시대적 상황과 당시 국민들에게 공감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리더들에게 요구되는 의사소통의 성공조건은 대체로 네 가지다. 첫째가 진정성이다. 아무리 좋은 스토리와 뛰어난 텔링을 한다고 할지라도 진정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모레 위에 성을 쌓는 것에 불과하다. 탄핵 위기에 직면했던 미국의 닉슨과 클린턴 전 대통령도 진실을 감추려는 거짓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가까스로 탄핵을 모면한 바 있다. 둘째는 광청(廣聽)이다. 즉 말하는 것보다 듣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셋째가 눈높이다. 스토리 텔링의 대상에 따라 그 내용과 방법은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네 번째가 타이밍이다. 적절한 시기에 의사소통이 결여되면 앞의 세 조건이 충족되도 실패한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은 이번 대선에서 어떤 후보의 스토리 텔링에 열광할지 정말 궁금하다. 대선주자들은 이제 어떤 의사소통능력을 갖고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어필할지에 대해 치밀하게 준비해야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다. 후보들의 의사소통능력이 대선 승리의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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