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월근 아름다운세상 이사장

나는 음악을 잘 모른다. 그러나 음악을 좋아한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명곡 감상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니면서 찻집에서 흐르는 카페 음악도 좋고, TV에서 요즈음 야단스럽게 흔들어대는 곡조도 싫지는 않고 좋은 것이다. 그런데 시골 잔칫집에 가보면 육칠십대 할머니들이 술도 취하기 전에 녹음테이프 소리나, 장고 소리에 더덩실 어깨춤을 추는 것으로 보아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없는 것 같다.

먼 나라 남의 이야기는 제쳐두고라도 우리네 조상들은 모심을 때 피로를 달래고 합심하면서 공동체 의식을 높이기 위해 모심는 노래를 불렀고, 뙤약볕에 밭을 매는 아낙네들도 물에다 간장을 타 마시면서, 삼베적삼 젖가슴으로 흐르는 더위를 잊는 노래가 있지 않았던가?

어디 그뿐이랴! 사나운 파도와 싸우는 뱃노래며, 북망산천으로 향하는 상여꾼들의 소리, 그리고 베틀 위에서, 또한 초군목동들이 두들기는 지게작대기 장단이 모두 우리의 장단이고 음악이 아니던가? 참으로 음악은 우리네 인생의 역사와 더불어 출발이 되었고, 또한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는 한 더욱 발전해 가면서 존재할 것이 분명하다. 아무튼 행진곡을 들으면 마음이 경쾌해지고, 장송곡을 들으면 엄숙하고 경건해지는 것은 누구나가 같은 느낌일 것이다.

이제 우리 인간생활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참으로 크고 넓어졌다. 자고 나면 창밖에서 우는 새소리도 음악이고, 거리에 나가거나 차를 타도 음악 소리가 들리며, 요즈음은 무슨 행사이든 좀 짜임새가 있는 기관이나 단체이면 우리의 가락 사물놀이 판이 벌어진다.

그런데 내가 아는 지극히 평범한 상식으로는 음악의 핵심은 ‘리듬’과 ‘하모니’에 있다고 본다. 만약 음악에 리듬이 없다면 그것이 우리 인간의 귀를 얼마나 짜증스럽게 할 것인가?

고저와 장단이 어우러지는 그 소리가 우리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도 하고, 가라앉은 마음을 요동치게 하며, 흥분한 군중을 가라앉힐 수도 있다.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극장에서 불이 났는데 흥분한 군중이 당황한 나머지 일시에 좁은 출구를 빠져나가려 아우성인데, 극장 종업원의 기지로 영국 국가를 틀어줬더니 질서를 회복하고 침착하게 모든 사람들이 극장을 무사히 빠져나갔다는 일화가 있다.

우리 인간생활에는 리듬이 깨지지 말고 계속돼야 할 것임은 물론 또한 음악에서 필요한 하모니, 즉 조화가 절대 필요한 것이다. 내가 겪은 50년 전쯤의 일이다. 그때 금산문화원을 창설하고, 초창기에 내가 원장직을 맡아 의욕만을 갖고 활동을 했을 때였다. ‘금요음악회’란 써클활동을 매주 했는데, 초·중등학교 선생님들과 지역의 젊은 남녀 회원들이 모여 퍽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운영됐다. 그런데 그 노래를 부르는 속에 모 중학교 여선생님의 소프라노 소리가 대단했고, 그 목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나는 그 여선생님 덕분으로 금요음악회의 합창이 돋보인다고 생각을 했으며, 그 당시 지도교사에게도 내 생각을 말했는데, 대답은 하지도 않고 왠지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맛살을 찌푸리는 것이었다. 자기 목소리를 과시하느라고 소프라노 소리가 너무나 커 합창의 하모니가 잘 이뤄지지 않고 깨져버린다는 의미를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음악에서 뿐만 아니라 조그마한 모임에서부터 사회의 집단에서도, 자기의 소리를 좀 낮출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할 것 같다. 우리들 인생이 음악 속에 묻혀 살게 됐듯이 우리는 그 음악의 중요한 리듬과 하모니의 참뜻을 음미해 이를 생활과 처신의 지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서, 문득 감미로운 음악 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창밖에 다가서는 봄기운 탓일까? 봄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봄처녀’란 음반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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