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대 교수

 

박효관의 ‘님 그린 상사몽이’

 

님 그린 상사몽(相思夢)이 실솔(蟋蟀)의 넋이 되어
추야장(秋夜長) 깊은 밤에 님의 방에 들었다가
날 잊고 핑이 든 잠을 깨워 볼까 하노라

대표적인 사랑과 이별의 시조다. 님 그리워 꾸는 꿈이 귀뚜라미 넋이 되어 추야장 깊은 밤 님의 방에 들어가 날 잊고 깊이 든 님의 잠을 깨워보겠다는 것이다.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잠 못 이루는 화자의 애절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리운 님을 어찌하면 만나볼 수 있을까. 님은 무정하게도 나를 잊고 깊은 잠에 빠져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밤을 새워 우는 저 귀뚜라미는 잠든 님을 깨우려고 슬피 울어대는 것이 아닌가.

귀뚜라미는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움의 소재다. 님은 그리움에 잠을 못 이루는데 님은 여기에 없으니 꿈길 밖에, 귀뚜라미 넋으로 밖에 달리 길이 없다. 그래야 잠든 님의 방에 들어가 깨울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도 중허리 시조로 부르고 있는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곡이다. 초장에서 평시조의 선율로 부르다가 중장에 가서 감정을 고조시켜 섬세하고도 청아하게 높여 부른다. 종장에 가서는 평시조 곡조로 숨을 고르며 마친다.

박효관(1781~1880)은 고종 때의 가객으로 제자 안민영과 ‘가곡원류’를 편찬했다. 이 문헌에는 남창부 665수, 여창부 191수 등 총 856수의 시조 작품이 실려 있다.

‘가곡원류’의 발문에는 같은 시기에 아무 근거가 없는 잡요가 유행함으로써 정음(正音)이 사라질까 개탄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하면서 군자의 정음을 회복할 것을 주장했다. 사설시조를 짓지 않고 평시조만 지은 것도 그의 시가관이 어떠한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흥선 대원군으로부터 ‘운애’라는 호를 받았으며 노인계와 승평계 가단을 조직, 문학과 음악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금옥총부’ 중 ‘안민영서’는 박효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운애 박 선생은 평생 노래를 잘하여 당세에 이름을 날렸다. 매양 물 흐르고 꽃 피는 밤이나 달 밝고 바람 맑은 때이면 금준을 받들고 단판을 두드리며 목을 굴려 소리를 하였는데 유량하고 청월하여 들보 위의 먼지가 날고가던 구름이 멈추는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비록 옛 이구년의 뛰어난 재주라도 여기에 더할 것이 없었다. 이 때문에 교방과 구란의 풍류재사와 야유사녀들이 그를 추중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이름과 자를 부르지 않고 박 선생이라 칭하였다. 이때 곧 우대에 모모의 여러 노인들이 있었는데 역시 모두 당시의 이름 있는 호걸지사들인지라, 계를 맺어 ‘노인계’라 하였다. 또 호화부귀자와 유일풍소인들이 있어 계를 맺고는 ‘승평계’라 하였는데 오직 연락을 즐김이 일이었으니 선생이 실로 그 맹주였다.

그의 시조 15수가 전하고 있으며, 그의 가곡창은 하준권·하규일을 거쳐 오늘에 전해진다. 사랑과 이별의 노래, 그의 가편 한 수를 소개한다.

공산에 우는 접동 너는 어이 우짓는다
너도 날과 같이 무슨 이별 하였느냐
아무리 피나게 운들 대답이나 하더냐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