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 부여군수

14세기 흑사병이 아시아로부터 침투되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인 약 2500만 명이 사망했다. 영국의 인구도 400만 명에서 반토막이 됐다. 이는 심각한 경제변동으로 나타났다. 농민계급은 부유해지고 노동력의 부족은 농노의 가치를 상승시켰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다수의 귀족들은 농업을 단념하고 양을 키우는 데 전념했다. 이러한 변동은 사소한 일 같았으나 바로 이것이 대영제국을 탄생시킨 원인이 되었다. 양모거래의 발전, 판로개척의 필요성, 제해권 유지의 긴요함 등이 섬나라적인 정책으로부터 제국주의적, 그리고 해군 우선 정책으로 전환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사소한 변화로부터 제1차 산업혁명의 전조(前兆)가 보였던 것이다.

지금은 산업 간 융합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지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의 주인이 되기 위해 소리 없는 전쟁 중이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준비 순위는 139개국 중 25위였으나 지금은 순위를 확인하기조차 두려울 정도다. 국정공백이 길어지면서 동력상실이 염려된다. 그러나 제1차 산업혁명 탄생의 교훈이 말해주듯 위기는 곧 기회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와 기업, 학교 등 모든 집단이 연계와 협력을 통해 시대적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각 영역에서 기초에 충실해야 함은 물론, 긴 호흡이 필요하다. 정부는 국가적 목표를 정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전략적 판을 새로 짜야 한다. 기업은 창의적이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 즉 ‘개념설계(concept design)’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학교는 좋은 인재를 양성하고 뿌리기술 연구·개발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고용이라는 안전판은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야 할 숙제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제 역할을 찾아야 한다.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고 혁명적 변화에 스며들 수 있는 조직을 구성하는 등 새롭게 재편되는 산업 생태계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을 가로지르는 핵심단어가 ‘연결’인 만큼, 부서 간 협치를 통한 농업과 문화가 만나고, 경제와 복지가 서로 안아주는 새로운 ‘행정상품’ 개발에도 총력을 다해야 하겠다. 혁신성과 유연성, 융통성을 두루 갖춰야 할 것이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은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죽어라 뛰어야 한다.”고 했다.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는 주변 세계가 이미 앞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뒤처진다. 끊임없이 달려야 겨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역시 고정된 명사가 아닌 움직이는 동사(動詞)의 시대에 살고 있다. 늦었지만,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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