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용 대전시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

행복을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행복은 가까운 데 있고 내가 생각하는 바에 따라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고들 말한다. 맞는 말이다. 행복은 나 자신에 의해서 실현돼야지 강제에 의해서 결코 행복하게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행복할까?

행복의 조건은 다양하다. 권력, 부, 성공 등도 행복의 조건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해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이 모두 행복할 순 없다.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린 어느 권력가는 말년에 크게 후회한다고 회고를 한 적이 있다. 어느 날 그의 가정에는 대화와 웃음이 없어지고 삭막한 분위기속에서 살아가게 된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고.

요즘 사회를 보면 이분화된 사회의 단면을 극단적으로 보고 있다. 나와 대립된 사람은 무조건적으로 나의 적이고 나와 같이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어떤 이유나 상황에 관계없이 대립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현상은 자라나는 후세대들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아마 그런 사회적 성향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고대사회부터 현대사회까지 많은 국가는 대립과 갈등속에서 발전과 쇠퇴를 가져왔다. 발전의 국가는 대립과 갈등을 소통을 통해 상호 간 공감하는 국가를 만들었고 쇠퇴의 국가는 그 대립과 갈등으로 멸망하기도 했다.

사회적 공감대 형성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나? 많은 의견이 있겠지만 필자는 소통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본다. 언젠가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의 기자간담회를 시청한 적이 있다. 사전 공지된 인터뷰 내용뿐만 아니라 현장의 의견도 접수해 답변하는 오바마 대통령을 보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지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언론과의 대화를 자기 편의주의 언론으로만 국한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사회를 트럼프 대 반트럼프의 사회 양상으로 만들고 있다. 왜 트럼프 대통령은 소통하지 않을까? 자기정책에 대해 반대를 가졌다고 대화를 차단한다면 반쪽의 미국만을 만들기 위한것인지 의문스럽다. 지금의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문제로 사회는 이분화됐다. 이제는 법의 결정에 따라 우리 사회도 다음을 위해 하나가 돼야 한다. 미래를 위해 상호 간 대화와 발전정책을 공감하면서 소통과 화합된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이런 모습은 우리 사회 행복을 위한 우선조건이 될 것이다. 나와 대립된다고 해서 상대방과 이야기를 안한다는 것은 독선이다. 내 의견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의견도 듣고 그 의견에 대해 반박과 공감을 통해 나와 상대가 소통함으로 우리는 하나가 된다. 독선은 자기 본인을 위한 대변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럼으로 자기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형성하지 못한다. 그것이 과연 자기 본인의 행복일까? 행복을 어렵게 그리고 멀리보지 말자.

행복이 무엇인가? 작게 보면 내 마음이 편안한 것이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출퇴근할 때 직장동료와 가족이 보고 싶다고 느낄 때 얼마나 좋을까? 오늘은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의지하면서 희노애락을 같이 할까하는 생각과 그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그릴 때가 행복이 아닐까! 가정과 직장이 행복하면 다른 큰 생활도 가정과 직장의 행복을 안고 들어가므로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한 소통과 그들과 함께하는 화합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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