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민대학 인문학 강사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 않다’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창하였다. 즉 인간은 누구나 선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이기심과 욕망의 선하지 못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하지 못한 본성을 다스리지 않으면 이기적 욕망 때문에 남을 시기하고 미워하게 되며 그리하다 보면 남과 쟁탈하게 되고 나아가 천하를 혼란스럽게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는 어느 정도의 이기심과 욕망은 필요하다 하겠다. 문제는 정도가 지나친 욕망 즉 탐욕 그리고 정도가 지나친 이기심 즉 쟁탈심이다.

이러한 탐욕과 쟁탈심이 나 자신은 물론이고 남과 사회를 파멸시키는 것이다. 채근담에서는 ‘마음에 한번 탐욕이 싹트면 굳센 의지가 약해지고, 밝은 지혜가 어두워지며, 인자하던 마음이 잔악해지고, 청렴결백하던 사람이 탐관오리로 타락하여 일생을 망치게 되므로 탐욕을 없애는 것이야 말로 세상을 초월하며 사는 좋은 방법’이라 하였다.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쳐주지 않는 것처럼 내 마음은 바르고자 하나 탐욕이 내 바른 마음을 흔드는 것이다. 탐욕으로 인하여 청렴의 의지가 흔들리며, 밝은 지혜가 어두워지고, 어진 마음이 사악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께서도 ‘마음을 수양하는데 있어서 욕망을 다스리는 것만 한 것이 없다’ 하였다. 옛 선비들의 수양의 화두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가’였으며 옛 관리들은 ‘어떻게 하면 탐욕의 마음을 없애는가’였다.

▲ 玉이 보배가 아니라 탐욕하지 않는 마음이 보배이다. 송나라의 어떤 사람이 보배로 여기는 옥(玉)을 벼슬이 높은 관리에게 뇌물로 바쳤으나 그 관리는 그것을 돌려주면서 말했다. “그대는 옥을 보배로 여기지만 나는 사물을 탐하지 않는 내 마음을 보배로 여기오. 만일 그대가 그 옥을 나에게 준다면 그대는 그대의 보배인 옥을 잃을 것이며 나는 탐하지 않는 나의 보배로운 마음을 잃을 것이오.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의 옥을 그대로 간직하고 나는 탐하지 않는 나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다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보배를 잃지 않고 간직하는 것이 되지 않겠소.”

▲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돈, 지위, 권력을 가진 사람을 대체로 출세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추락하고 파멸하는 것은 거의가 탐욕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돈, 지위 권력만이 보배인 줄 알았지 탐함을 멈출 줄 아는 지혜와 용기가 참 보배인 줄 몰랐기 때문이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 했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는 다는 뜻이다. 돈, 지위, 권력, 색을 탐하다가 모든 것을 잃고 인생을 파멸시킨다면 이야말로 소탐대실이 아니겠는가.

▲ 답은 止(그칠 지)이다. 인간의 욕망은 브레이크 없는 열차와 같아서 멈추지 않으면 큰 화를 초래하게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탐욕으로 인한 큰 화를 당한 뒤에야 멈추게 되나, 그때는 이미 늦었음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중요한 것은 욕망의 멈춤의 때를 알아 멈출 줄 아는 지혜와 용기, 그리고 결단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답은 止(그칠 지)인 것이다. 수나라의 왕통이라는 사람은 ‘작은 지혜는 오직 꾀하기만 하지만 큰 지혜는 멈출 줄 안다.(小智唯謀 大智知止)’라 하였고 ‘인간의 승패(勝敗)와 영욕(榮辱)은 止(그칠 지)자에 달려 있다’ 하였다. 명예로움을 끝까지 지킨 사람은 한결같이 물러 날 때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박수칠 때 물러날 줄 아는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항룡유회(亢龍有悔) 즉 내려와야 할 때 내려오지 못해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용이 되는 것이다.

▲ 그렇다. ‘좋은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정도(正道)’는 ‘좋은 것’이다. 탐욕은 ‘좋아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에 집착하느라 ‘좋은 것’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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