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원래 성숙되지 못한 선거판은 진흙밭 두재비통 같다고 하지만, ‘촛불혁명’으로 찾아온 ‘장미대선’은 정말로 실망스러운 똥칠 싸움 같다. 그 성숙한 촛불의 행동과 생각과 말과 깔끔함과 거룩하기까지 하던 평화의 기운이 선거판 바람에 밀려나거나 꺼질까 두렵다. 촛불 어미를 잡아먹을 것 같은 기세로 달려드는 대선판국이다. 후보든, 참모들이든, 운동원들이든, 지지자들이든 속히 촛불의 마음, 촛불의 정신이 보여주던 시대정신의 흐름으로 돌아오라. 촛불의 지시와 요구사항은 자기를 태워 속을 밝히고, 그 빛으로 곁과 세상의 어둠을 밝히자는 것이지, 남의 눈 속 티끌을 찾아내자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부정과 낙망과 부패와 갈등을 버리고 긍정과 희망과 산뜻함과 평화로운 세계로 가자는 것이 촛불을 밝힌 본래의 뜻이지 않던가? 촛불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교훈은 현실정치와 깊은 영성의 통합이 가능하다는 점이라고 본다. 그러니 돌아오라. 모든 물어뜯기 식의 선거전에서 창조하는 새 생명의 기운으로 돌아오라. 선거가 끝나면 이긴 자와 진 자가 하나로 맘을 모아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나가야 할 것 아닌가? 영원히 다시는 보지 않을 듯한 모습으로 싸우지 말라. 그 싸움 보자고 촛불을 든 것이 아니다. 돌아오라! 제발 돌아오라! 성찰하고 성숙된 모습으로 돌아오라! 가만히 자신들의 속을 밝히는 촛불을 들라. 그리고 반성하라. 이기고 지는 것이 대수가 아니라, 그것으로 가는 길, 과정을 더 귀하게 여기기를 바란다.

갈라진 나라와 민족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겪고 아직도 그 폐해를 경험하고 있으면서 왜 ‘통일’이라는 것이 선거 이슈가 돼야 하는가? 누가 보아도 남북의 문제는 우리 자신들이 풀어야 할, 평화와 상생의 길로 가야 하는 자명한 것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안보는 강력한 무력으로는 결코 보장되지 않는다. 강력한 핵무장으로도 되지 않고, 어떤 완벽하다는 공격과 방어체계의 군사력으로도 안보는 보장되지 않는다.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것은 평화안보요 상생안보다. 남북한으로 갈라진 것도 서러운데 다른 곳에 사는 형제를 향하여 ‘주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안보론이 되지 못한다. 한반도의 평화체계는 미국이나 중국이나 러시아나 일본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처음과 과정과 나중 결론을 이끌 사람은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우리들뿐이다. 주변의 세력은 단순히 보조수단일 뿐이다. 우리가 굳게 평화로운 하나가 되려는 맘이 있을 때 주변의 세력들은 그것을 도울 수밖에 없다. 당당하라. 외세는 아무리 강력하고 아무리 친절하다고 하더라도 외세일 뿐이다. 물론 함께 살아야 하는 세력이지만, 보조세력일 뿐이지 우리를 지킬 핵심주체는 아니다. 나를 세우지 않고는 어떤 친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가 없는 법이다. 평화의 기운을 선거전에 도입하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매우 불안해한다. 이번 선거판에서 질까 봐가 아니라, 누가 되든 새로 구성되는 정권과 정부가 성공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두려워한단 말이다. 아마도, 누가 되든 이번 새로 세워지는 정부와 정권은 매우 힘이 들 것이다.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성숙된 시대정신을 수렴하고 실현할 힘을 갖춘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준비하지도 못하였기 때문에, 당선되는 순간부터 일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첩첩이 쌓인 문제들과 파도처럼 밀려오는 새로운 일들에 대응하기 위하여 매우 힘이 들 것이다. 이것은 이 정권과 정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운명이 갈라지는 일이다. 이번에 새로 수립될 정부와 정권의 성공과 실패는 곧 우리나라의 갈 길을 지시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 모두가 다 도와야 한다. 성공을 빌고, 힘을 모아 함께해야 한다. 이 말은 두루뭉술 모든 것을 다 수렴하고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 편, 내 식구들만을 중심으로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후보들이나 가까운 곳에서 열심히 일한 사람들은 정권참여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서 있는 것이 좋다. 그 대신 숨어 있는 인재를 발굴하여 통합과 협력을 이끌 기운을 돋우어야 한다. 지금 선거는 누구를 좋아서 뽑는 것이라기보다는 뽑을 수밖에 없기에 그 중에 어느 누구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준비되어서가 아니라 함께 해나가겠다는 의지로 뽑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신속하되 신중하게 책임을 맡아 일할 사람을 폭넓게 찾고 또 찾아야 한다.

여기에는 촛불이 할 일이 또 있다. 촛불은 거대한 권력을 물러나게 한 전력을 가진다. 그것은 한 번 혁명으로 일단 그 할 일을 하였다. 같은 방법으로 잦은 촛불이 나서는 것은 일을 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촛불은 속을 태워 자신을 변화시키되, 만들어진 정권과 정부에 대하여는 일단 참고 기다리면서 밀어주어야 할 것이다. 끊임없이 촛불을 밝히되 앞길을 밝혀주는 길잡이가 돼야 할 것이다. 촛불을 드니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으로 일종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정치개혁은 좀 짧고 쉬울 수 있지만, 사회개혁은 참으로 더디고 오래 간다. 촛불이 요구하던 일들은 길고 긴 세월을 끊임없이 가면서 우리에게 육화하고 생활문화로 정착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일을 위하여 촛불은 속을 밝히고 자신을 밝히고 길을 밝혀야 할 것이다. 외치고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동력이 되는 책임주체로 밝혀지는 촛불이 되어야 할 것이다. 며칠 남지 않은 선거판이 촛불의 거룩함으로까지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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