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아직 세상은 살만합니다

▲ 대전 중부서 서대전지구대 오두환 경위(오른쪽)와 김다정 순경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24일 대전지방경찰청에 한통의 감사 글이 전달됐다. 20대 딸을 둔 아버지는 서대전 지구대 경찰관과 택시기사의 배려에 “제가 큰 은혜를 입었다”고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사연은 이랬다. 20대 여성 은지(가명) 씨는 지난 21일 오후 회사동료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사회초년생인 은지 씨는 이날 동료들에게 회사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과정에서 평소보다 술을 많이 마시게 됐다. 이후 술자리를 벗어나 택시를 타고 대전 중구에 있는 숙소로 향한 은지 씨, 숙소 인근에 도착해 내렸지만 그녀는 과음을 한 탓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휘청거렸다. 자칫 사고나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 은지 씨의 발걸음이 위태로웠다.

택시기사 박성재(67) 씨는 자신이 태웠던 승객이 도로에서 휘청거리는 모습을 사이드미러로 지켜봤다. 박 씨는 “태웠던 승객이 술에 취해 횡단보도에서 휘청거리고 있었다. 사실 돈을 받았기에 그냥 가도 됐지만 상당히 위태로워 보였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박 씨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곧바로 차량에서 내려 도로로 내달렸다. 그리곤 휘청거리던 은지 씨에게 ‘위험하다’고 소리쳐 인도로 데려와 앉힌 후 112에 신고했다.

‘남의 일’ 쯤으로 치부해 외면해도 될 법 했다. 그러나 박 씨는 그러지 않았다. 묵묵히 경찰이 올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평소 택시 안에 놓고 간 금품을 파출소에 갖다 주는 등 양심을 지키려 한다는 박 씨는 이날 역시 누군가를 위한 작은 배려를 했다.

잠시 후 대전 중부서 서대전지구대 오두환 경위와 김다정 순경이 도착했다. 매일 수많은 취객들을 상대하는 경찰들은 이날 과음을 한 은지 씨를 안전하게 숙소까지 데려다주기 위해 땀방울을 쏟았다. 오 경위는 “당시 여성분이 술을 많이 마셔 대화가 안 됐다. 스마트 폰을 달라고 해 비밀번호를 풀어달라고 하니 풀어줘 그제야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다. 신분을 밝힌 후 딸을 잘 데려다 주겠다며 어머니를 안심시켰다”고 말했다. 김 순경은 취한 은지 씨를 업고 숙소까지 안내했다. “술 취한 여성분의 몸이 축 쳐져 있어 힘은 들었지만 잘 데려다줘서 뿌듯했다”고 웃었다. 이날 과음으로 아찔한 상황에 놓일 뻔 했던 은지 씨는 택시기사와 경찰의 노력으로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은지 씨의 부모는 이 같은 배려에 큰 고마움을 표했다. 경북에 거주하는 은지 씨의 아버지는 “ 어떤 이들에게는 당연하게 생각될 일일지도 모르지만 자식 둔 부모에게 있어서는 참 의로운 일이다”며 “딸아이가 사회초년생으로 직장생활에 어려움이 큰 상황에서 과음을 해 따로 야단을 치진 않았다. 오두환 경위와 김다정 순경, (박성재) 택시기사 분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고 감사해했다.

한 아버지의 감사 인사에 경찰도 따뜻하게 화답했다. 서원우 서대전지구대장은 “청년실업이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되고 있는 이때에 사회 초년생으로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따님을 많이 격려해주시고 옆에서 흔들림 없도록 지금처럼 힘이 돼 주셨으면 한다. 또 우리 경찰관들이 안전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항상 가까이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음을 잊지 않으셨으면 한다”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곽진성 기자 pen@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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