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대 교수

 

위백규의 '돌아가자 돌아가자'

돌아가자 돌아가자 해지거든 돌아가자
계변에 손발 씻고 호미 메고 돌아올 제
어디서 우배초적(牛背草笛)이 함께 가자 배아는고

농가9장(農歌九章) 중 여섯 번 째의 노래 석귀(夕歸)다. 이 농가9장은 조선 영·정조 때의 실학자 위백규의 연장체 시조로 농촌의 하루 일과를 시간대별로 노래한 작품이다. 조출(朝出)·적전(適田)·운초(耘草)·오게(午憩)·점심(點心)·석귀(夕歸)·초추(草秋)·상신(嘗新)·음사(飮社) 등 각 수마다의 별도의 제목을 붙였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해지거든 돌아가자. 시냇가에서 손발 씻고 호미 메고 돌아올 때 어디서 목동의 풀피리 소리는 함께 가자고 재촉하는고. 하루 일을 마치고 흥겹게 집으로 돌아오는 농부의 마음을 율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자연을 관념적으로 예찬한 사대부 작품과는 달리, 사대부 신분이면서 농촌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현장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장흥, 호는 존재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열중했으며 10대에 이미 박학의 경지에 이르렀다. 천관산의 문중 재실인 장천재에서 스승 없이 독학하다 25세경 병계 윤봉구를 만나 그 문하에서 경서·의례·이기심성론 등 학문적 계도를 받았다. 39세 때 과거 공부를 단념하고 방촌 마을로 돌아와 사강회(社講會)를 통해 문중사회를 일신하고자 노력했다. 연시조 「농가구장」은 농업을 자영하는 이러한 활동 속에서 나온 작품이다.

차가운 굴뚝에 피는 연기는 붉은 느릅나무 삶는 것이네/
촌사람의 생활은 정말 개탄스럽고/
지금 나라의 곡식은 떨어졌건만/
고기 먹어 배부른 벼슬아치들은 아무 생각이 없네

존재 위백규의 구황식물 연작시 중 「유근(楡根)」이다. 유근은 가난한 집에서 끓여먹던 구황식물인 느릅나무 뿌리다. 존재는 장흥의 방촌마을에 살면서 당시 현실을 이렇게 세세하고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정현신보』, 『만언봉사』, 『환영지』 등을 저술한 그는 69세 때 정조의 부름을 받고 「만언봉사」를 올렸다. 옥과 현감을 제수받아 이상정치를 펼쳐보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와병 1년여 만에 졸했다.

장흥의 위백규는 순창의 신경준, 고창의 황윤적과 더불어 조선 후기 호남 세 천재 실학자로 불린다.

『정현신보』는 사회 모순을 비판하고 개혁 방안을 제시한 저술이다. 저자의 정치철학과 실학사상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으로 당시의 사회 현상의 시폐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조목조목 피력한 책이다.

『환영지』는 1770년 저술한 조선 팔도 및 중국, 일본, 유구의 지도와 지지, 천문, 제도 등을 기록한 책이다. 특히 조선팔도 총도는 독도(우산도·于山島)를 울릉도보다 크게 표기하면서 독도의 존재를 강조하고 있다. 독도 옆에 표기된 ‘이도(夷島)’는 일본의 북해도를 말하는데 ‘일본에 속하며 이들은 야인에 가깝다’라고 서술해 놓기도 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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