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대전민예총 이사장

최근 한 대통령 후보의 시대착오적이고 가부장적인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한 인터뷰에서 “설거지는 여자가 하는 일로 하늘이 정한 것”이라는 여성 비하 발언을 한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후보 자신의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치관의 표현이지만, 시대착오적인 편견의 표출이란 점에서 국민적 공분(公憤)을 사고 있다.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여성 후보의 강력한 사과 요구에 “남들이 스트롱맨이라고 부르길래 웃자고 한 말”이라며 너스레를 떨다가 마지못해 “‘말이 잘못됐다면’ 사과하겠다”라며 어정쩡하게 사과하고, 그의 아내까지 방송에 나와 남편의 진의를 애써 변론했지만 그의 여성 비하 행태는 거침이 없다.

그가 2005년 펴낸 자서전 ‘나 돌아가고 싶다’에서 대학 1학년 당시 하숙집 동료에게 돼지흥분제를 구해주고, 그 동료가 짝사랑하던 한 여학생을 상대로 성폭행 범죄를 모의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기술하면서 “장난삼아 한 일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검사가 된 후에 비로소 알았다”라고 한 것이 알려지면서 파문은 더 커졌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28개 여성단체는 “피해자에 대한 진지한 사과가 없고, 또 성폭력 문제를 근절해야 할 국가 지도자로서 성평등감수성과 자질이 부족하다”라며 즉각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특히 자서전을 쓴 시점에 그가 검사를 거친 9년 차 정치인이었다는 점은 더욱 용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류의 절반이 여성인 세상에서 이런 시대착오적 행태는 여성 유권자의 분노를 자극해 득표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에 모든 후보들이 신경을 곤두세운다. 다른 후보가 강원지사와 평창올림픽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북한의 미녀응원단에 대해 “자연 미인”이란 표현을 무심코 했다가 바로 사과한 것이 바로 그런 경우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여성 비하 행태를 한 후보의 지지율이 조금씩 오르는 기현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마 권위적인 지도자에 대한 향수가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일 거고, 또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의 왜곡된 여성관도 나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본다. 창세기에 보면 두 가지 버전의 창조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는 유대민족의 바빌론 포로기에 쓰였고, 두 번째는 통일왕국 형성 이후 쓰이면서 내용이 좀 다르다. 첫 번째 창조 이야기에서는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셨다’라고 남녀의 수평적 관계가 강조된다. 두 번째 창조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한 야훼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한 뒤 그의 갈빗대 하나를 뽑아 여자를 만든다. 이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근본주의적 기독교인들은 여성은 남성을 돕는 종속적 조력자로 인식한다. 하지만 성서학자들은 솔로몬시대 지배계급에 의해 남성의 가부장적 여성 지배를 신의 형벌로 받아들이게 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본다. 이런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남성의 갈비뼈가 여성보다 하나 적다고 믿는 사람도 꽤 된다고 한다. 사실 첫 여성의 이름인 ‘하와’는 ‘갈빗대’, ‘생명’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의 관계는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아닌 서로를 생명처럼 아끼고 협력하는 친밀한 관계다.

덧붙여 뱀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으며 아담에게 권해 타락시켰다며 원죄의 책임을 여성에게 묻는 성경 구절이 여성혐오증으로 발전했다. 초대교회는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든가 “여자는 조용히 언제나 순종하는 가운데 배워야 한다”라는 바울의 말을 강조한다. 종교개혁가인 칼뱅도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돼 이끌어야 한다. 아내는 남편의 결정에 정숙하게 따라야 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첫 번째 창조 이야기에서 확인하듯, 여성과 남성은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존재로 서로 보완하며 일치를 추구하는 수평적 관계임이 분명하다. ‘여성 혐오’의 불명예를 쓰게 된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여성 사역자를 앞세우는 모습이나 당시 평민이나 이방인에게 적극 선교하는 그의 급진적인 평등주의 실천을 보면 초대교회가 제도화되면서 바울의 모습을 왜곡한 것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원죄의 편견이 만들어낸 여성 혐오의 시대착오적 이미지를 극복해 남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존재로서의 그 존귀함을 우리의 삶 속에서 회복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