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작가, 한국문인협회 이사)

내일(5월 9일)은 제19대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초래하고 치러지는 이번 조기 대선에 임하는 필자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착잡하다. 애초 15명(2명은 사퇴)이나 되는 후보들이 난립하는 과열 현상을 보였지만 정작 마땅히 찍을 후보는 없다. 좌우, 중도보수 후보 등 다양한 이념의 후보들이 있지만 한 표를 누구에게 던질지 오히려 더 망설여진다. 사전투표율이 26.06%에 달했다고 하니 더욱 곤혹스럽기만 하다.

동족상쟁의 6·25를 일으킨 북한과 마주한 상황에 그 북한을 주적으로 보지 않는 좌파 대통령에게 한 표를 던질 수도 없고, 고해성사였다고 고백은 했지만 해서는 안 될 막말을 하는 후보는 미덥지 못하다. 중도우파를 표방한 후보는 실은 좌파 원조인 상왕들을 모시고 있으니 그를 찍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자당 대통령의 과오를 스스로 정제하지 못하고 뛰쳐나와 배신의 정치를 펼치는 후보에게 한 표를 줄 수도 없다. TV토론에 힘입어 인기가 상승하고 있는 듯하지만 여성 대통령에게 실망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것도 정치적 영향력이 미미한 당의 여성 후보에게 표를 던지기도 난망하다.

내일 투표장으로 가긴 가야 하는데 국민들의 삶을 바꿔 줄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그게 답답하다. 중국은 아직도 그 옛날 종주국의 입장에서 조공을 받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한반도를 바라보는 듯하다. 게다가 미국을 믿지 말라는 말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각인시켜주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드 비용 10억 불 발언이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이 마당에 뽑아야 하는 대통령인데 그 누구도 확실한 비전을 주지 못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한 국가나 민족을 이끌어갈 지도자는 참으로 중요하다. 애급에서의 노예생활을 청산하게 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유대 민족을 인도하면서 꿈과 희망을 준 모세와 여호수아가 그랬고, 로마대제국에서 회자되는 아우구스투스에서부터 카이사르에 이르는 지도자들도 그랬다.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한 빅토리아 여왕도 기억돼야 할 지도자다. 시선을 안으로 돌려 한글 창제를 비롯해 과학·음악 등의 문화 융성과 자주국방의 틀을 견고하게 한 세종대왕과 같은 현군을 만날 수는 없을까 하는 필자의 마음이 오늘따라 간절해진다.

지도자가 지녀야 할 품성 중 으뜸 덕목을 꼽는다면 덕치를 할 수 있는 온화한 인품과 냉철한 판단력을 갖춘 리더십이다. 거기에 국민과 소통하면서 분명한 비전을 갖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면 금상첨화다. 무소부지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백성 위에 군림해선 안 된다. 우리는 지도자를 잘 못 만나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바로 옆에 두고 있다. 백두혈통을 자칭하는 그곳의 지도자들은 3대를 이어 세습왕조를 이루면서 인민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백성을 굶주림 속에 허덕이게 하고 있다. 잘못된 지도자의 리더십이 국민들을 참담한 지경으로 빠지게 할 수밖에 없다는 전형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 와중에 우리는 내일 새 대통령을 뽑으러 투표장에 나가야 한다. 마땅한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기권을 할 순 없다. 현대사를 돌아보면 억압과 속박 속에서도 우리는 어렵게 민주화를 이뤄왔다. 다행히도 한 때 지도자를 잘 만났고, 또 근면성실하게 살아온 국민의 덕으로 이만큼 부를 축적했다. 이제 마땅한 지도자가 없으면 국민의 힘으로라도 만들어 세워야 할 수밖에 없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국민의 수준이 정부의 수준을 만든다”라고 했다. 지도자의 수준은 절대적으로 국민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다. 물론 수백 년이 걸려야 할 민주화나 부의 창출을 단기간에 이룩하다보니 가치관의 혼란으로 진통을 앓을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 민족은 역시 위대하다. 역사적으로 봐도 주변국들의 침략과 압박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단군 이래 최대의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국민의 자긍심이자 단결된 힘이 표출된 결과다. 내일 투표장에 나가 소중한 한 표로 지도자를 세우자. 그리고 그가 지도자로서의 덕목이 부족하다면 우리가 먼저 추앙하고 받들면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국민의 응집된 힘을 발휘하자. 이제 우리 국민 수준도 이쯤에 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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